화려했던 등장은 ‘서막’에 불과했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23)는 이미 KBO리그의 대들보로 자리 잡았다.
이정후도 자신의 위치를 모르지 않는다. “어린 선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우리가 앞으로 더 주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과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리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걸 알기에 갖는 책임감이다.
2017년 1차 지명으로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이정후는 ‘레전드의 아들’로 일찌감치 관심을 모았다. 그의 아버지는 현역시절 ‘바람의 아들’로 불린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다.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정후는 데뷔 첫 시즌 전경기(144)를 뛰며 179안타를 작성, 역대 KBO리그 신인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작성했다.
질주는 계속됐다. 2018년엔 타율 0.355로 한 단계 올라섰다. 그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 획득에 앞장섰다.
팀을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떠오른 이정후는 올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타율 0.360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타율 1위에 이름을 올리며 입단 후 첫 타이틀 홀더의 기쁨을 누렸다. 전례 없던 ‘부자 타격왕’의 탄생이라 더 특별했다. 아버지 이 코치는 1994년 타격왕(타율 0.393)에 올랐는데 27년 후 아들 이정후가 타율 1위로 대를 이었다. 이정후도 “일반적인 타격왕도 기분 좋겠지만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 건 더 의미가 있다”며 활짝 웃었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거머쥔 ‘1위’다. 이정후는 시즌 중반부터 강백호(KT 위즈), 전준우(롯데 자이언츠)와 타율 1위를 두고 접전을 벌였다.
‘타격왕’이란 결실은 물론 이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얻은 것도 많다.
이정후는 “이번 경험은 야구를 하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타율이 동률까지 갔던 적이 있는데 그런 심리적인 부담을 느껴봤다. 타석에 설 때의 간절함도 더 커졌다”면서 “올해 많이 배웠기 때문에 다음에 그런 상황이 오면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년 후배’ 강백호와 경쟁하며 품은 더 큰 꿈도 있다. 2018년 ‘야구 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프로에 뛰어든 강백호도 이정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리그 대표 선수다.
이정후는 “어린 선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앞으로도 우리가 주축이 되고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내년에 아시안게임도 있고, 앞으로도 많은 국제 대회가 있다. 나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앞으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우리가 이끌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도 백호와 다치지 않고 계속 이런 경쟁을 하면서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데뷔 5년 차,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그러나 지금까지 걸어온 것과는 또 다른 책임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후도 이를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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