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배구 지도자때 ‘버럭 호철’ 별명
여자팀 처음 맡아 스타일 변신 한창… “욱하는 모습 마스크로 가려 다행”
동료감독에 여성심리학 책 건네받고, 선수 생일때 장미꽃다발 선물까지
“강압적으로 운동시키던 시절 끝나… 선수들 스스로 하는 배구가 최고”
“지나간 일은 인정하고 잊자. 현재와 미래만 생각하자.”
지도자 경력만 26년인 김호철 IBK기업은행 신임 감독(66)은 16일 선수단과의 첫 만남에서 이 같은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신부터 선수들에게 지난 이야기에 대해 일절 묻지 않았다고 한다. 김 감독은 “밖에서 들은 이야기도 많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루빨리 팀을 정상화할까란 생각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구단에서 불거진 내홍 사태에 대해서는 “본분을 지키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답했다.
22일 경기 용인 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김 감독은 1시간가량 인터뷰하는 동안 ‘섬세’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과거 남자부 지도자 당시 ‘버럭호철’이라고 불려온 그에게서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단어. 처음 여자부 감독을 맡게 된 김 감독은 “구단의 제안을 받고 하루를 고민했다. 여자 선수들의 섬세함을 따라갈 수 있을까란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배구선수 출신 딸(김미나 씨)의 격려에 결심을 굳혔다는 김 감독은 “사실 배구에서 (현역 시절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세터만큼 섬세한 포지션도 없지 않냐”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18일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기업은행 감독 데뷔전을 치른 그는 “경기 내내 카메라가 내 욱하는 표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 마스크로 표정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경기 뒤 대신고, 한양대 선배인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70)에게 ‘여성들을 위한 심리학’ 등 여성 관련 책 2권을 선물로 받았다. 21일에는 2년 차 센터 최정민(19)의 생일을 맞아 장미꽃 20송이를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 “앞으로 선수 생일 때마다 꽃집에 가게 생겼다”며 엄살을 떠는 김 감독의 모습에서 ‘섬세호철’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V리그 대표 명장인 김 감독이 바꿔 놓을 팀의 새로운 모습도 기대를 모은다. 기업은행은 당장 김 감독의 두 번째 경기인 23일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2-3 패)에서 풀세트 접전을 이어가면서 이전과는 달라진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세터로 이름을 날렸던 김 감독이 조송화(28) 이탈 후 팀의 새 주전 세터가 된 김하경(25), 3년 차 이진(20)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을지도 팬들의 관심거리다. 센터를 주로 맡았던 김희진(30)은 라이트로 기용할 계획이다. 새 외국인 선수 산타나(26)는 아직 체력 문제로 한 달 뒤에나 풀타임 출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새 출발선에서 첫걸음을 뗀 김 감독에게 목표를 물었다. “선수 생활 마지막 3년을 남겨 놓고 비로소 배구의 재미를 깨달았는데 막상 감독이 돼 그 재미를 모르고 살았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시켜서 운동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선수들이 스스로 재미를 느껴서 배구를 하는, 감독보다는 선수가 주인공인 그런 배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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