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를 달구는 진격의 장타자…해마다 비거리 1m 전진[김종석의 TNT타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4일 10시 54분


새해부터 드라이버 46인치 제한
80년 첫 장타 1위 댄 폴 274야드
2021년 디섐보 323.7야드는 역대 최고
규제에도 더 뜨거워질 파워 경쟁

지난해 미국PGA투어에서 역대 평균 드라이버 최고  기록 323.7야드로 장타왕에 오른 브라이슨 디섐보.
지난해 미국PGA투어에서 역대 평균 드라이버 최고 기록 323.7야드로 장타왕에 오른 브라이슨 디섐보.
골프에서 흔히 드라이버는 쇼라고 한다. 2022년 새해부터는 그 쇼에도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드라이버 샤프트 길이가 46인치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골프 규칙을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지난해 48인치까지 허용되던 드라이버 샤프트 길이를 올 들어 2인치 줄이기로 했다.

비거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오히려 골프 게임의 묘미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이 있다. 폭발적인 드라이버에 이어 웨지를 잡아 손쉽게 버디를 쌓는 모습에 열광할 팬들이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46인치 보다 긴 드라이버를 쓰는 대표적인 선수인 필 미켈슨, 브라이슨 디섐보, 브룩 핸더슨 등을 중심으로 반론도 거세다. 미켈슨은 이번 조치에 대해 “한심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40년 만에 골프 붐이 일어난 마당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 드라이버 길이가 줄면 비거리도 줄어든다. 그만큼 골프의 인기도 줄어들 것이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규정은 공식 대회에만 적용된다. 주말골퍼들은 50인치 드라이버를 꺼내들어도 무방하다. 강제 의무 조항도 아니어서 주최 측이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때맞춰 장타를 둘러싼 조명도 쏟아지고 있다.

여자 장타왕은 290야드
미국LPGA투어에서 장타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아림. KLPGA 제공
미국LPGA투어에서 장타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아림. KLPGA 제공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비거리는 1980년부터 공식 집계되기 시작했다. 1980년 초대 장타왕에 오른 댄 폴은 274.3야드를 기록했다. ‘필드의 물리학자’ 디섐보가 2021년 작성한 역대 최고 기록 323.7야드 보다 약 50야드(약 45m) 차이가 난다. 지난 42년 동안 해마다 1m 이상 늘어난 셈이다.

지난 시즌 폴 보다 짧게 친 선수는 196명 중 최하위였던 최경주(269.5야드) 뿐이다.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장타 1위 앤 밴 담의 비거리는 290.8야드에 이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장타자 김아림도 지난 시즌 LPGA투어에서 276.8야드로 5위를 차지했다.

1980년 PGA투어 선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56.5야드였다. 2022시즌 296.1야드 보다 40야드 가까이 적다.

악동 존 댈리 장타왕 최다 11회
미국PGA투어에서 역대 최다인 11차례 장타왕에 오른 존 댈리. 동아일보 DB
미국PGA투어에서 역대 최다인 11차례 장타왕에 오른 존 댈리. 동아일보 DB
PGA투어를 빛낸 최고 장타왕은 역시 ‘풍운아’ 존 댈리다. 1991년 25세의 나이로 처음 장타 1위에 이름을 올린 뒤 2002년까지 11차례 최고 장타자에 등극했다. 1994년 데이비스 러브3세에게 장타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면 12년 연속 장타왕에 군림할 수 있었다. 댈리는 1997년 처음으로 평균 300야드 벽을 깨며 장타 타이틀을 지키기도 했다. 댈리가 12차례 장타 1위를 기록하는 동안 300야드를 넘긴 시즌은 4차례였다. 댈리는 장타를 자신 만의 무기로 삼아 1991년 PGA챔피언십과 1992년 BC오픈, 1995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정상에 올랐다.

댈리는 한국 최고의 메이저대회인 코오롱배 한국오픈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국내 골프팬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3년 충남 천안시 우정힐스CC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특유의 장타를 앞세운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쳐 까다롭기로 소문난 대회 코스를 무력화시킨 끝에 마지막 날 4언더파를 쳐 승부를 결정지었다.

눈에 띄는 핑크 드라이버로 장타왕에 오른 왼손 거포 버바 왓슨. 동아일보 DB
눈에 띄는 핑크 드라이버로 장타왕에 오른 왼손 거포 버바 왓슨. 동아일보 DB


솔방울 쳤던 왼손 장타왕 왓슨
댈리의 후계자는 솔방울을 치며 독학으로 골프를 익힌 ‘왼손 거포’ 버바 왓슨이다. 왓슨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장타왕에 오른 뒤 2012년과 2014년 장타 1위를 차지해 두 번째로 많은 5회 기록을 남겼다. 왓슨은 2012년 ‘명인 열전’이라는 마스터스에서 헤드와 샤프트가 온통 눈에 띄는 핑크색으로 된 핑의 ‘핑크 G20’ 모델을 사용해 주목받았다. 이 드라이버는 로프트 8.5도에 44.5인치 샤프트가 장착됐다. 핑은 왓슨이 300야드 이상을 날릴 경우 300달러 씩 자선기금을 적립했다. 장타가 나올 때 마다 누군가를 위한 선행을 실천한 것이다.

댈리에 앞서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장타 1위를 차지한 시즌에 우승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장타왕=무관’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던 시기였다.

J.B. 홈스(2011, 2016년), 더스틴 존슨(2015년), 로리 매킬로이(2017, 2018년) 브라이슨 디섐보(2020, 2021년) 등도 장타왕 클럽 멤버다. 디섐보는 지난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3라운드 6번홀(파5)에서 드라이버 티샷으로 370야드를 보내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캐리 거리 344야드(약 315m)에 볼 스피드는 시속 196마일(약 315km), 클럽헤드 스피드는 137마일(약 220km)에 이르렀다.

폭발적인 장타를 기반으로 골프 황제에 올라선 타이거 우즈.
폭발적인 장타를 기반으로 골프 황제에 올라선 타이거 우즈.


5야드라도 멀리 치고 싶은 골퍼 욕망
PGA투어 최다승 타이 기록인 82회 우승을 달성한 타이거 우즈와 45차례 PGA투어 챔피언에 오른 미켈슨은 장타왕에 오른 적이 없다. 골프위크에 따르면 우즈는 네 차례 장타 2위에 오른 게 최고 성적. 장타 1위는 아니었어도 우즈와 미켈슨이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비거리를 바탕으로 우승컵을 수집했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골프를 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만 얼마라도 드라이버를 더 보내고 싶어 한다. 티샷이 짧아 남보다 늘 세컨드 샷을 먼저 해야 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골프가 직업인 프로들도 마찬가지다. ‘남달라’ 박성현은 “꾸준히 275야드를 보내면 골프가 편해질 것 같다”고 말한다. 김아림 역시 “안정적으로 5~10야드를 더 쳐야 한다. 그래야 쇼트게임 부담이 줄어든다”고 밝혔다.

드라이버 샤프트 제한을 뚫고 비거리 경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 멀리 치기 위한 남다른 노력이 새해에도 필드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P.S PGA투어에서 드라이버 거리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수집할까. 라운드 마다 두 개의 홀에서 측정된 거리의 평균 값을 계산한다. 바람의 영향에 대응하기 위해 마주보는 방향의 두 개 홀이 선택된다. 맞바람 1개 홀, 뒷바람 1개 홀로 정해 바람의 영향을 상쇄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페어웨이나 러프에 상관없이 공이 멈춘 지점에서 거리를 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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