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늦깎이 골프 입문, 30세 프로
육아 학업 레슨 운동 병행 슈퍼우먼
챔피언스투어 상금왕 2연패 기량 만개
조로화 KLPGA 신선한 바람
스물 살에 골프를 시작했다. 프로 선수가 된 건 서른이 넘었을 때다. 남들이 모두 늦었다고 여길 만 만했지만 그는 달랐다. 운동, 육아, 학업을 병행하는 쉽지 않은 여정에도 그는 묵묵히 걸어간 끝에 40대 후반에 필드의 여왕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근 2년 연속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챔피언스투어 상금왕에 오른 김선미(49·한광전기공업)다.
●“3년 연속 상금 1위 향해 다시 달려야죠”
새해 들어 세는 나이로 50이 된 그는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뚝 떨어진 요즘도 새로운 시즌에 대비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체력 훈련 위주로 몸을 만들고 있어요. 올 겨울도 코로나로 해외 전지훈련을 못 가게 돼 마음이 바쁘네요. 2월부터 제주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3연패를 향해 각오를 단단히 해야죠.”
김선미는 만 40세 이상이 출전하는 챔피언스투어에 42세 때인 2015년 뛰어들어 2016년과 2017년 연이어 상금 랭킹 2위로 시즌을 마친 뒤 2020년과 지난해 연이어 상금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챔피언스 투어 통산 76개 대회에 출전해 컷 탈락은 단 한 번뿐이다. 74개 대회 연속 컷 통과 행진을 하고 있을 만큼 꾸준한 페이스다.
“오래도록 간절하게 상금왕을 기다렸어요. 꾸준한 성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타이틀이기에 제 자신 칭찬해주고 싶어요. 지난해는 대회가 줄어들긴 했어도 4차 연장 끝에 우승도 하고 잊지 못할 시즌이 됐네요. 한광전기공업, 레노마 등 후원해 준 기업도 큰 힘이 됐습니다.”
지난해 챔피언스투어 상금왕 자격으로 KLPGA투어 정규 대회에도 2차례 출전해 조카뻘 되는 쟁쟁한 후배들과 기량을 겨뤘다.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과 메이저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 나선 건 소중한 경험이 됐다. “어린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와 실력을 통해 영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더라고요.”
●“하루 25명 레슨 하느라 입에선 단내”
키가 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구 선수를 한 김선미는 구타가 일상화된 단체 운동을 견디지 못해 고교 시절 배구 코트를 떠나야 했다. 우연찮게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20대 때 골프를 시작한 그는 26세 결혼한 뒤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출산과 육아 등으로 골프채를 잠시 내려놓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30세 나이에 KLPGA 정회원 자격증을 딴 뒤 투어 생활을 하던 그는 30대 중반을 넘긴 2009년 경희대 골프산업학과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이 된데 이어 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공부와 투어프로 생활을 병행하며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서울 강남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하루 25명까지 가르치느라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난 적도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골프를 배우지 못했지만 하나하나 골프를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프로가 된 뒤에는 20년 동안 3일 이상 클럽을 놓은 적이 없을 정도로 매달렸습니다. 군대 갔던 아들이 14일 제대한 걸 보면 세월 참 빠르네요.”
김선미에게 볼, 장갑, 골프화 등을 지원하는 타이틀리스트 관계자는 “골프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며 항상 노력하는 선수다. 더 높은 무대를 향해 정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평소 받지 않던 클럽 피팅까지 해가며 경기력을 끌어올리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꿈을 펼치는 투어 활성화되기를”
지난해 ‘탱크’ 최경주(52)는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우승했다. 최경주는 챔피언스투어를 ‘ATM투어’라고 불렀다. 대회에 나가면 돈이 나온다는 의미로 그만큼 상금 규모, 대회장 분위기가 좋다는 의미다. 이런 환경이 김선미에게는 부럽기만 하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KLPGA 챔피언스투어도 직격탄을 맞아 대회 취소가 쏟아졌다. 김선미는 “챔피언스 투어는 젊을 때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가정생활을 하느라 누군가의 삶에 묻혀 있던 선수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새로운 활력을 전하는 무대”라며 “왕년의 스타들도 적극적으로 출전하면 흥행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순미 KLPGA 수석 부회장은 “김선미 프로는 슈퍼우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다른 회원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며 “챔피언스투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간결한 스윙이 정확성의 기반”
김선미는 정교한 아이언 샷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의 통산 그린적중률은 78.6%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90%를 넘기도 했다. 그 비결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김선미는 “8,9번 아이언 연습과 100m 이내 샷을 집중적으로 해보면 좋다. 하프스윙을 하면서 볼 콘택트 능력을 향상시키면 몸에서 자연스럽게 힘도 빠지면서 정확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쇼트 아이언으로 편차를 줄이고 일관성을 높이면 긴 클럽 역시 좋아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간결한 스윙과 과도한 체중이동을 피하면서 임팩트가 한 부분이 아닌 공 앞 30cm 정도까지의 구간이라고 생각하고 길게 가져가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했다. 힘의 분산이 덜 되고 몸의 축이 흔들리지 않게 돼 정타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60세까지 10승 달성 꿈”
김선미는 2022년 새해 상금왕 3연패와 투어 1승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면서 먼 훗날까지 내다봤다. “60세까지 투어 생활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 10년 동안 5승 더하면 10승 채우는데 꼭 이루고 싶네요.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합니다. 아프지 않는 게 핸디죠. 오히려 체력은 어렸을 때보다 좋아진 거 같아요. 다시 태어나도 골프 선수가 되고 싶을 만큼 골프를 사랑합니다.”
최근 KLPGA에서는 20대 중반만 넘어가도 황혼기라는 얘기가 나온다. 너무 일찍부터 과도한 운동에 노출돼 더 이상 뭔가를 할 육체적, 정신적 의욕이 사라진 ‘번아웃’에 쉽게 휩싸인다. 잦은 부상도 선수 수명을 단축시킨다.
‘엄마 골퍼’ 김선미는 달랐다. 출발은 늦었지만 50대를 바라보는 요즘도 열정은 뜨겁기만 하다. 그의 도전은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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