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겨울올림픽 평행대회전 銀, 베이징서 세계정상 향해 재도전
개최국 中 텃세에 우려도 크지만 월드컵 시즌 1위로 상승세 유지
“욕심 부리지 않아야 기량 발휘…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낼 자신”
유독 컨디션이 좋은 날이었다. 11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 6차 대회 8강전. ‘배추보이’ 이상호(27·하이원)는 꿈틀거리는 질주 본능을 억제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게이트를 돌다 보드 앞쪽이 눈 속에 파묻혔고, 순간 보드 뒤가 빙 돌며 중심을 잃었다. 직전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땄던 그는 이날 5위로 만족해야 했다.
잠깐의 실수로 치부하고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는 그동안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이번 시즌 한국인 최초로 월드컵 금메달을 땄고, 시즌 월드컵 종합 랭킹은 1위(434점)에 올랐다. 하지만 이상호는 이번 실수를 잊지 않기로 했다. 이날의 실수가 그를 올림픽 메달에 한발 더 가까이 데려다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노보드는 순간의 판단이 중요한 종목이다. 하루 만에 예선과 본선, 결선을 모두 치른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본선에서 한 번의 실수가 ‘노 메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딴 이상호도 7차 월드컵에서는 9위를 기록했다. 그는 “올림픽에서 만나는 선수들의 기량은 정말 한 끗 차이다. 누가 실수를 덜 하느냐로 승패가 대부분 갈린다”며 “본선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훈련했던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선수가 이긴다”고 말했다. 올림픽 직전 월드컵에서 범한 실수는 그에게 ‘절제의 미학’을 알려준 값진 수업이 됐다.
어려움 속에서 밝은 면을 찾아내는 건 그의 특기다. 2018 평창 올림픽 은메달 직후 이상호는 2019∼2020시즌 어깨 부상을 당했다. 수술 뒤 출전한 2020∼2021시즌에도 종합 랭킹 27위로 부진했다. 그는 “힘들었던 순간이었지만 재활만 잘하면 성적은 금방 오를 수 있다고 봤다. 자존감이 높은 편이라 ‘이럴 때도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견뎠다”고 회상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 텃세’에 대한 우려도 나오지만 이상호는 오히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다음 달 3일 출국 전까지 강원 횡성 웰리힐리파크에서 훈련할 예정인 그는 베이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리한 환경들까지 예측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상호는 올림픽 예선 5위 이내에 들어 코스 선정 우위까지 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올림픽 목표를 묻자 이상호는 즉각 “금메달”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번 시즌 월드컵 종합 랭킹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나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현재 몸 상태나 장비, 컨디션 등 모든 게 준비가 잘돼 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차질 없이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 강조했다.
평창의 설상을 은빛으로 물들인 이상호가 베이징에서는 금빛으로 바꿀 수 있을까. 4년간 착실히 쌓아온 노력의 힘을 믿는 이상호의 카카오톡 알림 말에 근거 있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