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단독 선두를 질주 중인 SK 전희철(49) 감독은 상승세의 원동력 중 하나로 상대 에이스의 특징 분석을 통해 전담 수비 선수를 ‘매치 업’ 시켜 잘 대응한 점을 꼽았다. 지난 시즌까지 SK를 이끈 문경은 전 감독(현 기술자문)은 선수의 약점을 가리는 틀을 짜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플레이하도록 했다. 지휘봉을 넘겨받은 전 감독은 아예 틀의 개념 없이 100% 장점 발휘를 하도록 전력 분석 단계에서 더 세밀한 정보를 선수에게 제공하면서 자신 있게 맡긴다. SK에서 전력 분석 코치 경험이 있는 전 감독은 분석 파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특히 리그 최고의 판타지 스타인 허웅(DB)과 허훈(KT) 형제를 전담으로 막는 두 명의 ‘에이스 스토퍼(스타 전담 수비수)’가 업그레이드된 것을 높게 평가한다. 최원혁과 오재현은 공격력이 강한 가드 김선형의 수비 부담을 줄이고 상대 공격 시간을 지연시키는 수비 선수다. 각 팀의 에이스를 막지만 허웅과 허훈의 평균 기록을 줄이고 공격에 부담을 주는 것은 단순히 승리 이상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팀에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전 감독은 본다.
1980년대 후반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의 정덕화(전 KB스타즈 감독)는 한국 역대 슈터의 양대 계보인 ‘슛도사’ 이충희(현대전자), ‘전자슈터’ 김현준(삼성전자)을 ‘그림자 수비’로 막아냈다. 한 경기 30점 가까이를 쉽게 넣는 이들은 정덕화만 만나면 고전을 했다. 기아가 ‘허재-강동희-김유택’으로 이뤄지는 역대급 트리오 공격에 집중하며 현대, 삼성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원조 에이스 스토퍼의 역할도 컸다.
최원혁은 허훈을, 오재현은 허웅을 전담한다. 허훈은 빅맨을 활용한 빠른 3점 슛과 돌파가 능하다. 수비를 제치는 기본적인 핸드오프(빅맨이 공을 갖고 상대를 등지고 있을 때 순간 다가가 공을 받는 움직임) 동작이 무척 빠르다. 눈치가 빠르고 스텝이 기민한 최원혁이 적당하다. 허웅은 스크린을 활용한 2대2 공격에 능하고 드리블과 힘으로 공간을 밀고 들어간다. 상대를 끝까지 따라가는 수비에 능한 오재현에게 맞는 스타일이다.
본인의 장점에 슈팅 구간별 성공률 차트 등의 전력 분석을 곁들여 맞춤 수비를 하고 있다. 허훈은 3점 슛 바깥 라인에서 왼쪽 47.3%, 오른쪽 37.8% 등 높은 슈팅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다만 3점 슛 라인 바로 안쪽으로 들어오면 좌우, 중앙, 코너에서 전부 적중률이 떨어진다. SK 김기만 코치는 “허훈의 경우에는 원, 투 드리블로 3점 슛 라인 안쪽으로 들어오게끔 수비를 한다. 이 때 빅맨까지 도움 수비를 한다”고 설명했다. 허웅은 3점 슛 라인 바깥에서 좌우 비대칭이다. 왼쪽 45도 지점과 코너의 3점 슛 적중률이 높은 반면, 오른쪽에서는 적중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오른쪽 코너에서 3점 슛 성공률도 27.3%다. 때문에 허웅을 되도록 오른쪽으로 몰아가는 수비를 펼친다. 허웅이 오른쪽으로 이동할 때는 외국인 센터가 따라나가는 헷지 도움 수비를 자제한다.
효과는 수치에서 드러난다. 허웅은 4차례 SK전에서 평균 13.7득점을 올렸다. 나머지 8개 상대 득점(17.1점)과 비교해 득점이 줄었다. 허훈에게는 2차례 경기에서 19.5득점을 내줬지만 파생 공격 득점을 줄였다. ‘에이스 스토퍼’로 둘을 잡는 노력을 하면서 KT(40.1%), DB(41.6%)의 팀 전체 야투율까지 끌어내렸다. SK를 상대한 9개 팀 중 가장 낮다. 3점 슛도 KT가 SK 전에서 27.7%, DB도 29.4%로 저조했다. 이런 여파를 다른 팀으로 이어지게 하려 한다. ‘에이스 중의 에이스’를 잡는 노력으로 SK는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도 수비로 경기 흐름 뒤집기가 가능한 농구에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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