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거나 은퇴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자신의 활약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다시 썰매를 들었다. 한국 남녀 루지의 간판 임남규(33·경기도루지연맹), 에일린 프리쉐(30) 이야기다. 이들은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루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3일 중국 베이징 옌칭 슬라이딩 센터에서 까다로운 주행 코스를 온몸으로 익혔다.
임남규의 왼쪽 정강이에는 12cm 길이의 흉터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 훈련 도중 썰매가 뒤집히는 바람에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가 났다. 힘을 쓸 수 없어 목발을 짚고 다녀야했다. 결국 시합도 못 치르고 지난달 2일 귀국했다.
정강이보다 더 아팠던 건 마음이었단다. 평창 올림픽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걷다 다시 썰매를 들었는데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서보지도 못하고 커리어가 끝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귀국 후 “두 번 정도 월드컵에 더 나갈 기회가 있는데…”라는 코치의 말에 누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난 그는 귀국 3일 뒤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라트비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붕대 투혼을 펼친 끝에 극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쥐었다.
독일 출신 귀화선수로 평창 대회 때 한국 올림픽 루지 사상 최고 성적인 8위에 올랐던 프리쉐가 태극마크를 달고 두 번째 올림픽에 나서기까지 여정도 쉽지 않았다. 한국 루지의 역사가 된 기쁨도 잠시. 이듬해 2월 열린 월드컵 8차 대회에서 트랙 벽과 크게 부딪혀 꼬리뼈와 양손 곳곳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꼬리뼈 부상 탓에 그냥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프리쉐는 약 2년 반이 지난 지난해 여름에야 썰매를 겨우 탈 정도의 몸 상태를 회복했다. 그는 이후 2021~2022시즌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며 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냈다.
우여곡절 끝에 태극마크를 달게 된 두 선수는 모두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입을 모았다. 3일에도 트랙을 타다 12, 13번 코스에서 허벅지, 손을 트랙 벽에 부딪혀 왼손에 붕대를 감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모습을 드러낸 프리쉐는 “부상이 컸고 재활, (올림픽) 준비 과정이 힘들었기 때문에 ‘다음 올림픽’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썰매에 헬멧만 쓴 채 맨몸으로 누워 최고시속 150km까지 나오는 위험한 운동을 하는 모습을 가족들이 마음 놓고 볼 리도 없다. 프리쉐는 “엄마가 연락할 때마다 항상 ‘다치지만 말라’고 했는데 오늘도 다쳤다. 걱정할 거 같아서 오늘 다친 건 말 안할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이 ‘대충’이라는 의미일 리는 없다. 임남규는 “평창에서 30위를 기록했다. 베이징에서는 이보다는 높은 순위로 마칠 것”이라고 했다. 프리쉐도 “목표는 15위로 잡았다. 하지만 내 마지막 올림픽이다. 후회가 남지 않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손에 태극기를 모티브로 한 네일 아트를 한 프리쉐는 이날도 취재진에 손을 보여주며 “화이팅”이라고 외쳤다.
베이징=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베이징=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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