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수와 바람만 스쳐도 실격”이라던 우려가 현실이 된 경주였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 황대헌(23·강원도청)과 이준서(22·스포츠토토)가 남자 1000m 준결선을 각각 1, 2위로 통과하고도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 황대헌-이준서, 중국 텃세에 울다
황대헌은 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선 1조 경주에서 3위를 달리다 네 바퀴를 남겨 놓고 단번에 중국의 런쯔웨이(25)와 리원룽(21)을 제치면서 선두로 치고 올라왔다. 황대헌은 이후 선두로 경주를 마쳤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레인 변경이 늦어 신체 접촉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실격 처분을 받고 말았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이 종목 금메달을 딴 이정수 KBS 해설위원은 “황대헌이 세계적으로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플레이를 선보였는데 판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4 소치 대회 여자 1000m 금메달리스트 박승희 SBS 해설위원 역시 “황대헌은 추월 과정에서 어떤 신체 접촉도 없었다. 오히려 황대헌의 왼쪽 무릎을 손으로 친 리원룽에게 실격을 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준서도 역시 레인 변경 반칙을 이유로 실격 판정을 받았다.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4개를 딴 전이경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는 “레인 변경 반칙 판정이 쇼트트랙의 묘미를 정말 떨어뜨렸다. 올림픽의 수준을 떨어뜨린 정도였다”고 비판했다.
이날 심판 판정은 중국 팬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자국 선수들이 다음 무대로 진출할 때마다 박수를 치던 이들은 비디오 판독 결과가 계속 중국 선수에게 연이어 유리하게 나오자 오히려 환호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관중의 환호보다 다른 나라 선수들의 야유 소리가 더 높았다.
경주를 마친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황대헌은 ‘심판 판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음에 하겠다”는 한마디만 남겼다. 박장혁(24·스포츠토토)도 준결선에 진출했지만 준준결선에서 피에트로 시겔(23·이탈리아)과 충돌해 넘어진 뒤 우다징(28·중국)의 스케이트날에 왼손을 다치면서 준결선 경주를 포기했다.
결국 중국 선수 세 명이 총 5명이 출전하는 결선에 올랐다. 결선에서도 류 사오린 샨도르(27·헝가리)가 1분26초74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비디오 판독을 거쳐 옐로카드를 받으면서 런쯔웨이가 금메달, 리원룽이 은메달을 차지했다. 박승희 위원은 결선 비디오 판독 결과가 나온 뒤 “이미 예정됐던 결과인가요?”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최민정(24·성남시청)은 여자 500m 준준결선을 4위(1분04초939)로 마무리하면서 준결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이 종목 금메달을 딴 아리안나 폰타나(32·이탈리아)에 이어 2위로 달리고 있던 최민정은 두 바퀴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다른 선수와 충돌 없이 넘어졌다.
○ 9일 열리는 남자 1500m 금 기대
중국이 ‘역대급’ 텃세를 부리고 있다고 한국 대표팀이 벌써 포기하기는 이르다. 쇼트트랙에 아직 금메달 6개가 남아 있다. 특히 9일 열리는 남자 1500m는 한국 선수단의 대표적인 ‘금밭’이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1500m 종목이 추가된 이후 한국은 이 종목에서 금메달 3개를 따냈다.
이번 대회 남자 1500m에는 황대헌, 이준서는 물론 박장혁도 출전할 계획이다. 박장혁은 이번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3, 4차 월드컵에서 연달아 이 종목 동메달을 따내며 랭킹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AP통신은 대회 개막에 앞서 박장혁이 이 종목 은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이 밖에 한국에 올림픽 금메달을 6개 안긴 여자 3000m 계주도 기대를 모은다. 여자 계주 결선은 13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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