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이 연일 화제다. 이전 올림픽처럼 한국이 연일 금빛 레이스를 펼쳐서가 아니다.
경기가 열린 날은 이틀(5, 7일)에 불과하지만 두고두고 곱씹을 에피소드가 이미 차고 넘쳐서다. 대부분 슬픈 결말인데 이야기의 주인공이 한국 선수단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개최국 중국의 텃세로 인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심판진마저 가세한 중국의 노골적인 ‘홈 어드밴티지’에 대해 외신 역시 불편한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은 ‘이슈메이커’를 넘어 ‘트러블메이커’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그렇다고 슬픈 에피소드만 수집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남은 경기가 많은 만큼 분위기를 끌어 올려야 한다. 반드시 메달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난 일에 주눅들지 말고 4년간의 노력을 제대로 펼쳐 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나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행복한 결말에 다가설 수 있다.
이를 위해 대표팀은 다시 한번 스케이화 끈을 조여 맸다. 황당한 판정 탓에 남자 1000m 결승 진출권을 빼앗긴 황대헌(강원도청)과 이준서(한국체대), 그리고 부상에 발목 잡혔던 박장혁(스포츠토토)은 9일 남자 1500m에 출격한다.
아픔을 씻어낼 기회다. 일부 선수들이 심리치료를 받는 등 앞선 경기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으나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은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이가 황대헌이다.
치열한 경쟁에 익숙한 탓인지 멘털도 남다르다. 속상함에 1000m 경기 후 인터뷰 요청을 고사했던 황대헌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 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남긴 어록을 옮기며 각오를 다졌다.
황대헌이 소개한 조던의 어록은 ‘장애물이 반드시 너를 멈추게 하는 것은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고 돌아가거나 포기하지 말아라. 대신 어떻게 그 벽을 오를지 해결책을 찾고 그 벽을 이겨내라’는 의미였다.
황대헌은 이번 올림픽 5개 종목에 출전한다. 혼성계주와 1000m의 메달 도전은 무산됐다. 그러나 1500m와 5000m 계주, 500m 종목이 남았다. 500m는 주 종목이기도 하다.
2018 평창 대회 때 500m 은메달을 따냈고, 이번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2차 대회서도 이 종목 정상에 올랐다. 황대헌은 8일(전날) 대표팀 공식 훈련을 마친 뒤 “벽(장애물)을 계속 두드려 돌파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실수와 부상으로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 못한 박장혁도 이를 갈고 있다. 박장혁은 처음 나선 올림픽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중이다. 첫 종목이었던 혼성계주 예선 때 결승선 3바퀴를 앞두고 얼음에 걸려 넘어졌다.
이후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또 불운과 마주했다. 박장혁은 1000m 준준결승 레이스 도중 넘어져 왼쪽 손가락 윗부분이 찢어졌다. 어드밴스로 준결승에 올랐으나 다친 손가락을 꿰매야 했기에 뛸 수 없었다. 현재 완벽한 컨디션은 아니다. 그럼에도 박장혁은 남은 경기 출전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다행스럽게 인대나 힘줄, 근육은 다치지 않았다. 회복에 주력 중인 박장혁은 1500m 출전에 대해 “경기력과 출전엔 문제가 없다. 부상 탓에 경기력이 나빴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박장혁은 앞서 AP통신의 메달 전망에서 이 종목 은메달 후보로 지목됐다. 시상대에 오르면 앞선 두 경기에서 허탈한 결과를 한 번에 날릴 수 있다.
첫 올림픽 무대를 경험 중인 이준서도 벼르고 있다. 실격의 아픔도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준서는 “이미 지나간 일이다. 앞으론 중국 선수를 신경 쓰지 않고 더 깔끔하게 경기하겠다”고 했다. 앞서 보여준 기량이라면 1500m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만하다.
명확한 기준 없는 심판 판정에 외에 부상도 주의해야 한다. 레이스 중 넘어지는 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유난히 넘어지는 일이 잦다. 트랙 양쪽 끝 곡선 구간이 이른바 ‘마의 구간’이다. 남은 경기가 많은 만큼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할 대목이다.
한국의 강경 대응으로 향후 심판진의 판정에 일정한 기준이 생길지도 관심이다.
대한체육회는 1000m 준결승 판정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도 직접 항의하기로 했다. 당장 결과를 뒤바꿀 수는 없지만 향후 각 종목 심판진의 판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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