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결선 경기에서 메달리스트보다 순위표 맨 아랫부분에 있는 선수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날 결선에 오른 20명 중 18위로 경기를 마친 우크라이나의 블라이슬라브 헤라스케비치(23)는 마지막 4차 주행을 마친 뒤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No War in Ukraine)’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카메라에 들어보였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경에는 약 10만 명의 러시아 군 병력이 집결해 언제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는 상태다. 서구 국가들은 침공이 임박했다고 판단해 이미 자국 국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헤라스케비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전쟁을 원치 않는다. 우크라이나,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원한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지금 우크라이나에는 어떤 무기, 어느 나라 군대가 도착하고 있는 지 같은 뉴스가 많다. 21세기에 이러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성명을 통해 헤라스케비치의 행동이 일반적인 평화를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올림픽 헌장 50조(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 금지) 위반이 아니라고 밝혔다. 앞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4일 개회식 연설에서 국제사회에 올림픽 기간 교전을 멈추는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준수해줄 것을 강조한 바 있다.
헤라스케비치보다 0.052초 늦은 19위를 기록한 선수는 경기 전부터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아메리칸 사모아의 네이선 크럼프턴(37)은 영하의 날씨를 기록한 개회식에서 상의를 벗은채 전통의상을 입고 기수로 나섰다. 2018년 평창 대회에서 역시 상의탈의 퍼포먼스로 개회식을 접수했던 통가 기수 피타 타우파토푸아가 해저화산 분출 여파로 이번 대회에 나오지 못한 가운데 새로운 근육맨의 등장은 전 세계에 화제가 됐다. 타우파토푸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내 자리를 대신 지켜준 아메리칸 사모아”라고 응원을 보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프리스턴대를 우등 졸업하고 미국 스켈레톤 대표팀을 지냈던 그의 이력에 주목했다. 그는 2011년부터 미국 스켈레톤 대표팀에서 8년간 활동했으나 내부 분쟁으로 대표팀을 떠났다. 아버지가 미국 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케냐에서 태어난 이후 그는 케냐 대표팀으로 올림픽에 나서려 했지만 케냐 당국으로부터 협조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어머니의 출신인 하와이와 같은 폴리네시아 제도인 아메리칸 사모아 올림픽위원회에 대표 자격을 문의했다. 1994년 봅슬레이 팀 이후 겨울올림픽 선수의 맥이 끊겼던 아메리칸 사모아는 크럼프턴 덕에 28년 만에 겨울올림픽 출전 선수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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