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게 불문이다. 더군다나 위기에서 일본을 만난다면 반드시 반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선영(리드), 김영미(세컨), 김경애(서드), 김은정(스킵), 김초희(후보·이상 강릉시청)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14일 중국 베이징 내셔널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올림픽 여자 단체전 6차전에서 일본을 10-5로 꺾었다. 같은 날 오전 미국에 6-8로 패해 5경기 2승 3패 위기에 몰렸던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반등에 성공하며 4강행 불씨를 살렸다.
올림픽 전부터 한일전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4년 전 평창 올림픽 당시 한국은 예선에서 일본에 패했지만 준결선에서 설욕하며 결선에 올랐고 한국 컬링 사상 첫 메달(은) 획득에도 성공했다.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했는데 두 팀이 매 경기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라이벌 관계도 형성됐다.
올림픽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열린 올림픽 자격대회(OQE)에서 한국은 일본에 2번 싸워 모두 졌다. 평창 대회 이후 대한컬링연맹 전임 집행부와 지도자 갑질 논란 등을 겪으며 ‘팀 킴’이 2년여 동안 태극마크를 못 달고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며 경기력이 저하된 여파가 있는 듯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목표를 세우기보다 한 경기 한 경기 집중 하겠다”고 했던 선수들도 일본만은 반드시 이기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출정식에서 김영미는 “두 번 졌으니 이제는 이길 때가 됐다”는 당찬 각오를 밝혔다.
경기를 앞두고 흐름은 일본이 유리했다. 첫 경기에서 스웨덴에 패(5-8)한 일본은 이후 4연승을 달렸다. 한국도 첫 상대인 캐나다에 패(7-12)한 뒤 2연승을 달렸지만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다시 2연패에 빠졌다. 약체로 평가됐던 개최국 중국을 상대로 한국은 13일 연장접전 끝에 5-6으로 패했지만, 이튿날 오전 일본은 10-2, 8엔드 만에 여유 있는 승리를 거뒀다.
일본전을 앞두고 김경애는 “우리가 중국에 지고 일본이 중국을 이겼다고 해서 일본이 우리를 100%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집중하면 충분히 일본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말은 현실이 됐다. 맞수 일본을 만난 한국은 오전과는 다른 팀이 됐다. 선공으로 1엔드를 시작했지만 적재적소에 돌을 놓으며 일본을 압박한 한국은 일본 스킵 후지사와 사츠키의 마지막 샷 실책을 유도하며 1점을 ‘스틸’(선공 팀이 점수를 가져가는 것)했다.
일본이 후공으로 시작한 2엔드에 2점을 내줬지만 후공으로 시작한 3엔드에 김은정이 연속 ‘테이크 아웃’(상대 돌을 쳐서 하우스 밖으로 밀어내는 것)을 성공시키고 하우스(과녁) 안에 한국 돌 3개만 남기는(한국 3점 획득) ‘빅 엔드’를 장식하며 승기를 잡았다. 한국이 7-4로 앞선 7엔드에도 스틸로 1점을 추가하며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9엔드가 끝나고 일본이 한국에 악수를 건네며 기권했다.
팀의 ‘핵심’인 스킵 대결에서도 한국의 완승이었다. 오전 미국전에서 샷 정확도가 75%에 불과했던 김은정의 일본전 샷 정확도는 90%로 치솟았다. 테이크 아웃 성공률이 100%였다. 반면 사츠키는 1엔드부터 실책을 저지르는 등 샷 정확도가 71%에 불과했다. 완승을 이끈 중국전(89%)에 비하면 손끝이 무뎠다.
경기 후 김영미는 “(일본전을 반드시 이기겠다고) 제가 질렀기 때문에 집중하고 힘을 모으다보니 좋은 샷들이 나온 것 같다. 7엔드를 스틸하며 분위기가 우리로 넘어왔다는 걸 느꼈다. 오늘을 계기로 반등해서 앞으로 좋은 경기를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하며 한국은 3승 3패로 캐나다, 영국과 함께 승률 기준 공동 5위가 됐다. 스위스가 6경기에서 5승 1패로 1위, 러시아올림픽연맹(ROC)가 6연패로 최하위로 쳐진 가운데 8개 팀이 치열한 허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패를 끊고 15일 하루 휴식을 취하는 한국은 16일 스위스, 덴마크(2승 4패·공동 8위)와, 17일 스웨덴(4승 2패·공동 2위)과 경기를 치르며 4강을 정조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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