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학업 부담에 시달리는 10대, 높은 취업 문턱에 가로막힌 20대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2년 넘게 고통 받고 있는 한국 국민.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나선 쇼트트랙 국가대표 황대헌(23·강원도청)은 이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맞닥뜨린 ‘벽’은 자신이 이번 올림픽에서 마주한 ‘벽’과 다름없었다.
황대헌은 17일 중국 베이징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 한국이 코로나19로 많이 힘들다. 10대, 20대도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데 어려움이 많다”며 “나도 여기서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나처럼 ‘벽’에 부딪친 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밝혔다.
황대헌이 이번 대회에서 마주친 가장 높은 벽은 7일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겪은 심판 판정 논란이었다. 그는 중국 선수 둘을 한꺼번에 제치고 1위로 들어왔지만 레인 변경이 늦었다는 이유로 실격 판정을 받았다. “중국 선수와 바람만 스쳐도 실격”이라던 우려가 현실이 된 경주였다. 이틀 전 2000m 혼성 계주에서도 예선 탈락이란 고배를 마신 데 이어 악재가 터지면서 쇼트트랙 대표팀 분위기는 크게 가라앉았다.
황대헌은 자신이 이 벽을 넘어서야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9일 1500m 결승에 나선 황대헌은 한국 대표팀 최초로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쇼트트랙 마지막 경기가 열린 16일 5000m 계주에서는 은메달까지 따냈다.
황대헌은 “1000m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을 때 많이 힘 들었다”면서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고 해낼 수 없는 일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여자 1500m 금메달리스트 최민정(24·서남시청)도 가슴에 한국을 품고 달렸다. 이날 황대헌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는 “판정 문제로 힘들 때 국민이 다같이 분노해줬다. 이번 올림픽은 정말 ‘함께하는 올림픽’이었다고 느꼈다”며 “(그 이후에)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면서 힘든 시기에 있는 국민께 힘을 줄 수 있어서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이날 황대헌과 최민정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18일 귀국하는 황대헌은 “돌아가면 ‘치킨 연금’이 확실한지 치킨부터 시켜서 확인해보고 싶다”고 말해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제너시스BBQ 회장인 윤홍근 선수단장은 사기 진작 차원에서 황대헌에게 평생 치킨 제공을 약속한 바 있다. 치킨 연금 확답을 못 받은 최민정도 “따로 말하기 좀 그래서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그냥 (황)대헌이 옆에 잘 껴서 먹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대신 최민정에게는 유명 인사들의 축하 메시지가 왔다. 은메달을 딴 11일 여자 1000m 경기 후에는 ‘배구 여제’ 김연경(34)이, 금메달 획득 이튿날인 17일에는 ‘피겨 여왕’ 김연아(32)가 축하를 전했다.
최민정은 “어제 우승하고 나서는 대회 기간이 길다 보니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면서 “숙소에 가서 축하 연락을 확인하고 감정 정리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 “(두 선수로부터 받은) 문자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문자를 받으니) 같은 운동선수로서 위로가 많이 됐고 힘이 났다”고 밝혔다.
한편 최민정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최소 2억1025만 원의 포상금을 받을 전망이다. 대표팀 관계자는 계주 멤버로 올림픽에 참여하고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메달을 따지 못한 박지윤(23·한국체대)에게도 포상금을 나눠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 쇼트트랙은 이번 올림픽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따며 종목 순위 1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개최국 중국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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