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보면서 두 번 크게 놀랐다.
첫 번째는 도핑 파문에 휩싸인 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올림픽위원회)의 부진이었다.
바흐 위원장은 18일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 결산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회에는 슬픈 스토리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발리예바”라고 운을 뗐다.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사실이 지난 8일 뒤늦게 드러나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IOC는 발리예바의 출전을 막기 위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지만, 패소했다.
우여곡절 끝 빙판 위에 선 발리예바는 쇼트프로그램 전체 1위로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비난의 시선이 더욱 거세진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실수를 연거푸 쏟아냈고, 합계 4위로 입상에 실패했다.
바흐 위원장은 겨우겨우 프로그램을 끝낸 발리예바를 보면서 “굉장히 심난했다”고 털어놨다. “얼마나 중압감이 컸는지 느껴졌다. 나도 선수 출신이라 알지만, 이 선수가 받았을 중압감은 내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더구나 이 선수는 15세 소녀다.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냥 퇴장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가 끝난 뒤의 장면은 바흐 위원장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얼굴을 감싸 쥔 발리예바는 복잡한 표정으로 빙판을 벗어났다.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는 이런 발리예바를 감싸주기는 커녕 “왜 포기했어? 왜 싸우길 멈췄어? 나에게 설명해봐”라고 추궁했다. 표정 또한 싸늘했다. 투트베리제 코치의 발언은 중계방송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갔다.
바흐 위원장은 “측근들이 발리예바를 대하는 장면을 봤는데 소름 끼칠 정도로 냉담했다. 위로하고 돕는 것이 아니었다. 쌀쌀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고, 거리감도 느껴졌다”고 개탄스러워했다.
이어 “몸짓을 보면 더 최악이었다. 무시하고 있다는 동작까지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선수에게 저렇게 냉정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보탰다.
바흐 위원장은 은메달 후 코치 앞에서 울분을 토하고, 시상식에서 손가락 욕설 의혹을 받는 알락산드라 트루소바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견해가 틀린 것 같진 않다고 했다. 바흐 위원장은 “그 내용을 봤을 때 내가 어제 저녁 받은 인상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발리예바의 측근과 관계자들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게 됐다. 불안감을 씻어버릴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15세 선수가 정신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하는 시기다. 어려운 시기에 주위 사람들이 계속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린 선수에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발리예바를 위해 IOC 자체 치유 프로그램 등까지 가동할 뜻을 내비친 바흐 위원장은 만일 주변 사람들이 발리예바의 도핑에 적극 가담했다면 처벌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바흐 위원장은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책임을 질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발리예바가 이번 대회에 출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세계반도핑법으로 보호되는 16세 이하의 어린 나이라는 점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너무 어린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바흐 위원장은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공정한 경쟁에는 동일한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면서 출전 선수 나이 제한 도입에 찬성표를 던졌다.
IOC 자체적으로 관련 내용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는 바흐 위원장은 세계반도핑기구(WADA) 및 각 종목 국제연맹들과 협의해 적절한 조치를 내놓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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