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중국 베이징 국립아쿠아틱센터. 최종전에서 한국이 4-8로 스웨덴에 패하고 4강이 좌절된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나온 여자컬링 대표팀 선수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렸고 결국엔 눈물이 터졌다. 4강에 못 가 분해서가 아니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오기까지의 지난 4년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서다.
2018 평창에서 한국컬링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은메달)을 획득하고 ‘영미 신드롬’을 만든 주인공들의 이후 4년은 순탄치 않았다. 광고 섭외가 물밀 듯 들어온 것도 잠시, 그해 말 대한컬링연맹 전임 집행부와 지도자 갑질 등으로 갈등을 겪어야 했다. 부당대우를 호소하며 선수들은 기자회견에 나섰고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집행부 간부들의 선수 보조금 횡령 등이 드러나 수사를 받고 법정에서 실형도 선고받았다.
힘든 시간을 겪으며 팀도 잠시 깨졌다. 2년간 태극마크의 주인공은 김선영(리드), 김영미(세컨), 김경애(서드), 김은정(스킵), 김초희(후보)로 구성된 ‘팀 킴’이 아닌 다른 팀이었다. 지난해 3월 강릉시청에 둥지를 틀 때까지 한동안 동호인처럼 살았다.
팀 킴이 다시 국민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평창 대회 당시 이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피터 갤런트 코치가 합류한 지난해 7월 이후다. ‘완전체’가 된 팀 킴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지난해 9월 캐나다에서 열린 컬링시리즈 대회에서 7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올림픽자격대회(OQE)에서는 마지막 남은 올림픽 출전권까지 거머쥐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김선영은 “평창 대회 때는 개최국 자격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얻어서 잘 몰랐는데, 이렇게 얻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다”라고 말했다.
최고 중의 최고들이 모이는 올림픽은 쉽지 않은 곳이었다. 4년 전 물샐 틈 없는 모습으로 올림픽 메달까지 획득한 선수들은 기복이 심했다. 어느 순간 ‘그때’의 모습을 회복한 듯 하다가도 경기장 환경 변화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쟁자들이 평창 대회 이후 치열하게 ‘다음’에 집중하는 동안 불가피하게 공백기를 가진 여파가 없을 수 없었다. 선수들과 함께 울먹였던 임명섭 여자컬링 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을 향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다음 올림픽에 도전 하겠다”고 한 팀 킴의 다음 올림픽 여정은 선수들이 노력만 한다면 경기 외적으로 마음고생할 일은 없을 듯 하다. 한국 선수단 부단장 자격으로 이번 올림픽에 참가해 선수들의 모든 경기를 직관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은 김용빈 대한컬링연맹 회장은 17일 선수들의 올림픽 여정이 끝난 후 “향후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대한카누연맹 회장을 맡을 당시 김 회장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여자 용선에서 남북단일팀 최초의 금메달을 일궜다. 지난해 초 컬링계 정상화를 위해 수장을 맡은 그는 전임 집행부 인사들과 선거를 둘러싼 송사에 휘말리며 몸살을 겪기도 했지만 정식 취임 이후 발 빠르게 연맹 정상화 작업에 공을 들였다. 태극마크를 다시 단 선수들에게 정신적 지주를 곁에 두게 한 것도 김 회장이다. 연맹 관계자는 “당시 선수들이 가장 원하는 걸 해주라고 (회장님이 얘기) 했고 갤런트 코치 영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국 컬링의 다음 ‘큰 그림’은 세계컬링선수권의 한국 유치다. 이번 올림픽 기간 동안 김 회장은 세계컬링연맹 회장 등 국제 컬링계 관계자들을 만나 세계여자선수권대회를 한국에 유치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세계선수권 등 큰 스포츠대회를 치르면 이를 계기로 경기장 시설 등 환경이 좋아진다. 국내 최고의 시설을 갖춘 강릉 컬링장도 평창 대회의 유산이다.
김 회장은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서 컬링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종목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세계선수권 유치는 물론 국내 리그 등을 창설하는 등 컬링을 ‘국민스포츠’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 2024년 강원유소년겨울올림픽부터 유망한 신인들을 발굴해 보는 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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