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지난 시즌 최고령 챔피언
홀인원 보다 어렵다는 앨버트로스 2회 작성
300야드 장타에 정교한 아이언 겸비
다둥이 가족 응원은 큰 힘
스포츠에서 ‘나이는 숫자가 불과하다’는 표현을 쓸 때가 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40대 전성기’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지난 시즌에는 PGA투어 51개 대회에서 40세 이상 선수가 8승을 합작했다. 시즌 2승을 거둔 48세 스튜어트 싱크를 비롯한 7명이 ‘4학년’ 이상이었다. 필 미컬슨은 51세 나이로 PGA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메이저 대회 최고령 챔피언 기록까지 갈아 치웠다.
국내로 시야를 돌려보면 상황은 다르다. ‘나이는 못 속인다’고 해야 할 판이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는 황인춘(당시 43세)이 2017년 10월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4차 연장전 끝에 우승한 뒤 4년 넘게 40대 우승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2022시즌에는 올해 불혹의 나이가 된 문경준(40·NH농협은행)이 40대 우승을 향해 달려갈 선두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KB금융 리브 챔피언십에서 6년, 69개 대회 만에 개인 통산 두 번째 타이틀을 안았다. 문경준은 황인춘 이후 최고령 우승자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 “부상 없이 모든 대회 톱10 진입 목표”
1982년에 태어난 문경준은 “늘 20대 중반 정도 마인드로 사는데 40살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올해 열심히 해서 다시 한번 정상에 서고 싶다. 모든 대회 톱10 진입과 제네시스 포인트 랭킹 톱5도 목표”라고 새 시즌을 향한 각오를 밝혔다.
프로골프 세계에서 40대는 한때 ‘샌드위치 세대’로 불리기도 했다. 20~30대 후배에겐 파워에서 밀리고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챔피언스 투어에는 참가할 수 없다. 하지만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고성능 클럽이 쏟아져 비거리 핸디캡을 줄여주고 있으며, 과학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으로 체력의 한계도 극복하는 양상이다. 풍부한 경험과 노련한 쇼트게임 능력은 어린 선수들이 갖지 못한 차별화된 장점을 꼽힌다.
문경준은 “젊은 선수들과 경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자신과 싸울 뿐이다”라면서 “다만 어린 선수들의 유연성과 체력은 좀 부럽다”며 웃었다. 2022시즌에 앞서 그는 무엇보다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부상 방지를 위한 간결한 스윙도 신경 쓰는 부분. “부상당한 팔꿈치 치료를 위해 본의 아니게 집에서 많은 휴식을 했습니다. 이제 컨디션이 올라와 재활운동과 체력운동, 샷 연습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 “쇼트 퍼팅 성공률 향상은 과제”
지난해 문경준은 상반기 시즌 개막 후 6월까지 6개 대회에서 우승 1회 포함 3차례 톱10에 들며 컷 탈락 한 번 없는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하반기 3차례 컷 탈락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21시즌 100점 만점에 80점을 주고 싶다는 그는 “국내외 투어를 병행하다보니 체력관리를 제대로 못해 기복이 있었던 것 같다. 적절한 휴식이 필요했는데 해외 투어에 다니면 골프장 환경(연습장, 쇼트게임장, 퍼팅 그린)이 너무 좋아 매일 연습만 했던 게 부상을 불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올 시즌에는 일관성을 높이려고 체력 운동과 컨디셔닝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있다. 문경준은 “체력 보강도 기본에 충실하려 한다. 골프 피트니스, 비거리 향상 등 다 중요하지만 몸 안에 어떻게 어디서부터 안정이 되고 어떻게 힘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며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준은 퍼팅 보완을 주요 과제로 지적했다. 지난해 그는 코리안투어에서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 291.3야드(21위)를 기록하며 후배들과 당당히 맞섰다. 드라이버는 캘러웨이 에픽 맥스 LS(로우스핀) 7.5도를 쓰는 데 샤프트는 44.74인치에 후지쿠라 벤투스 블랙 7 X를 장착했다.
그린적중률도 71.23%(18위)로 상위권을 유지했다. 아이언 샷의 달인으로 꼽히는 그는 몸통 스윙을 강조했다. “팔이 아닌 몸의 회전을 이용한 스윙을 해야 아이언 샷의 정확도가 높아져요. 원하는 지점으로 공을 보내려면 클럽과 몸이 따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중심축을 유지하면서 자신에 맞는 스윙을 하는 게 중요해요.” 양쪽 팔 사이에 공을 끼고 스윙을 하면 몸통 스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연습 방법도 조언했다. 공 대신 수건을 써도 된다고 한다.
반면 평균 퍼트수는 1.84개로 82위에 처졌다. “특히 취약했던 1,2m 거리의 짧은 퍼팅 성공률을 높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는 게 그의 얘기.
● “내편 같은 NH농협은행 응원으로 다시 우승”
문경준은 지난해 NH농협은행과 메인스폰서 계약을 하며 안정된 투어 환경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2015년 GS칼텍스 매경오픈 이후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우승이 없었습니다. NH농협은행 입단을 계기로 손병환 회장님과 권준학 은행장님 그리고 많은 임직원분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다시 우승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건 내편이 많아 졌다는 겁니다.” 그는 또 “회사에서는 사회 환원과 스포츠 마케팅의 일환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저는 골프를 통해 또 제 삶을 통해 그 이상의 가치를 드리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경준은 고교 1학년까지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다 대학교 2학년 재학 중 교양과목으로 골프를 처음 접했다. 뒤늦게 골프 선수가 됐지만 테니스와 골프의 공통점이 많았기에 빠르게 적응했다는 그는 24세 때인 2006년 프로에 데뷔했다. 2019년 우승 없이 7차례 톱10에 들며 KPGA 코리안투어 제네시스 대상을 받았다.
그는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든 앨버트로스를 두 번이나 했다. 지난해 3월 유러피언투어 케냐 사바나 클래식에 출전했다가 2라운드 7번홀에서 파4 홀인원을 기록했다. 앨버트로스의 확률은 200만분의1로 알려져 있다. 홀인원의 확률은 1만2000분의 1. 문경준은 2009년 성남 남서울CC에서 열린 GS칼텍스 매경오픈 2라운드 9번 홀에서 앨버트로스를 처음 낚았다. 파5 홀에서 세컨드 샷을 홀에 집어넣었다. 문경준은 “골프를 20년 가까이 했지만 파4 홀인원은 처음이었다.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집에서는 아침상 차리는 세 아들 아빠.”
세 아들을 둔 문경준은 남다른 가족사랑으로 유명하다. 필드 안팎에서 다둥이 아빠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의 아침식사는 제가 챙기려고 노력합니다. 골프선수이지만 제 인생에서 골프보다 더 중요한건 한 여자의 남편이고 세 아이의 아빠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간 나는 데로 와이프, 아이들과 함께 놀고 이야기하고 공부도 하고 지냅니다. 그냥 거리낌 없는 편한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문경준은 지난해 우승 후 “아빠 우승했다. 얘들아 고기 먹으러 가자”는 소감을 밝히며 활짝 웃었다. 올해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슬땀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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