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터널을 빠져나온 그는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4년 전 평창에서 겪은 고난의 시간을 흘려 보낼 준비가 된 듯 했다. 19일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결선을 마친 김보름(29·강원도청)은 “4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8 평창 대회 이 종목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김보름은 이날은 5위로 시상대 위에 서진 못했다. 그러나 올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랭킹(8위)은 물론 1차 대회에서 거둔 시즌 개인 최고 순위(6위)를 뛰어 넘었다. 앞서 준결선을 2위로 통과한 그는 결선 막판 4위로 순위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김보름은 “레이스 중반 이후 앞쪽에 있겠다는 작전을 세우고 들어갔는데 너무 서둘렀던 것 같다. 마지막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면서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을 해서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올림픽 경기를 치른 이 날은 김보름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이 불거졌던 평창 대회 여자 팀 추월 8강전이 열렸던 바로 그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듬해인 2019년 2월 19일에는 선배 노선영에게 폭언 등 괴롭힘을 당했다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 16일 노선영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김보름은 “이제야 평창올림픽을 미련없이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주 후 김보름은 “올림픽 때마다 눈물 흘리는 모습만 보여드려 밝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동안 힘들었던 게 생각나서 또 눈물을 흘렸다”고 울먹였다.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팬들에게 감사 인사도 덧붙였다. “하나하나 마음에 와 닿는 메시지가 많았다. ‘이미 금메달입니다’, ‘믿고 있었다’란 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힘든 시간을 스스로 이겨내 온 자신을 위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사실 힘들다고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다. 혼자 무너질 때도 많았는데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 조금 편하게 웃으면서 쉬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아 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기분이 좋다”며 자신의 세 번째 올림픽을 마무리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베이징=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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