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죠.”
한국 휠체어 컬링 대표 ‘팀 장윤정고백’의 홍일점 백혜진(39·리드)은 휠체어 컬링을 이렇게 정의했다.
2011년 교통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되면서 세상의 문이 닫힌 것만 같았다. 그 문은 2015년 휠체어 컬링을 시작하면서 다시 열렸다. 차가운 빙판 위에 설 때마다 뜨거운 마음으로 온 몸이 가득 찼다.
평생 짝꿍도 차가운 빙판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백혜진은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진행한 신인 선수 캠프 남편 남봉광(42·서울시청)을 만나 2020년 11월 웨딩마치를 울렸다.
컬링은 결혼한 지 1년 4개월 된 이 신혼부부를 갈라놓기도 했다. 의정부 롤링스톤 팀 소속인 백혜진은 지난해 6월 열린 2022 베이징 겨울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통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아내 백혜진이 몸담고 있는 의정부 롤링스톤은 남편 남봉광이 뛰는 서울시청과 국내 최강으로 손꼽히던 한국전력KDN을 줄줄이 꺾었다. 이후 9개월간 아내는 이천선수촌에서 패럴림픽 준비에 매진했다.
남봉광은 생이별을 기꺼이 감내했다. 그는 “(대표 선발전에서) 우리 팀이 떨어져 속상해 하고 있다가 아내가 국가대표가 되는 순간 너무너무 기뻤다”며 “컬링을 통해 직업도 얻고 평생 함께할 사람도 만났다. 내게도 컬링은 운명이 맞다”고 말했다.
‘컬링 부부’는 지난달 비장애인 올림픽 대표 ‘팀 킴’의 전 경기를 함께 지켜봤다. 남봉광은 “아내와 함께 컬링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작전 이야기를 많이 한다. ‘A가 괜찮다’, ‘B가 괜찮다’ 하다 서로 목소리가 높아질 때도 있다”며 웃었다.
남봉광 선수가 평가하는 백혜진은 어떤 선수일까. 남봉광은 “아내는 리드로서 얼음도 잘 파악하고 무엇보다 팀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속 깊은 선수”라며 “집에서도 내게 잘 맞춰주고, 잘 챙겨준다. 요리도 잘한다”며 ‘팔불출’ 모드를 이어갔다.
남편이 속한 서울시청은 지난달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때 경기 대표로 출전한 팀 장윤정고백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봉광은 “패럴림픽 직전에 당한 패배가 국가대표 팀에는 보약이 됐을 거라고 본다. 이 패배 덕에 끝까지 마음을 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를 향해서는 “컬링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네 명 모두 잘해야 승리할 수 있다. 긴장하지 말고 끈끈한 팀워크로, 국가대표 선발전 때처럼 도전자의 마음으로 경기해줬으며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번 대회 휠체어 컬링은 11개팀이 풀리그로 각 10경기를 치른 뒤 1~4위가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1-4, 2-3위가 맞대결을 벌여 결승행 주인공을 가린다.
한국은 6일까지 세 경기에서 1승 2패를 기록하고 있다. 첫 경기에서 라트비아에 4-8, 두 번째 경기에서 스위스에 7-8로 패했지만 세 번째 경기에서는 세계 2위 노르웨이를 상대로 9-4 승리를 거뒀다.
첫 승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린 한국은 7일 오후 3시35분 안방 팀 중국을 상대로 네 번째 경기에 나선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베이징패럴림픽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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