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돌다 막판 4코너 진가발휘
클리어검 제치고 4마신 차 골인
대상경주 3연속 우승 저력 보여
퀸즈투어 첫 국산마 우승 기대감
박종곤 조교사(60)는 3년 전 제주 라온목장에서 암말 라온퍼스트(5세·한국)를 마주친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22년 경력의 박 조교사가 보기에 라온퍼스트는 좋은 경주마가 되기 어려워 보였다. 당시 2세였던 라온퍼스트는 평균적인 암말보다 체중이 약 30kg 적은 430kg이었다. 왜소한 체구의 말이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은 말은 올해 경마 팬들에게 가장 큰 화두가 됐다. 라온퍼스트는 27일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에서 8경주(1800m)로 열린 제25회 동아일보배 대상경주(총상금 3억 원)에서 최범현 기수(43)와 호흡을 맞춰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은 1억6500만 원. 라온퍼스트는 통산 17개 대회에서 우승 10번, 준우승 1번으로 승률 62.5%, 복승률(우승 또는 준우승을 차지한 비율)을 64.7%까지 끌어올렸다.
이날 경주는 라온퍼스트의 독무대였다. 3코너까지 주로 바깥에서 3위로 달리던 라온퍼스트는 4코너에서 2위로 올라서더니 400m 정도 남은 직선 주로에 들어서면서 선두로 치고 올라왔다. 라온퍼스트는 뒤따르는 말과 무려 4마신(馬身·말의 몸 길이로 1마신은 2.4m) 차이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주마의 외형만 보면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라온퍼스트의 체중은 이날 2위를 차지한 클리어검(6세·한국)보다 약 20kg 적은 450kg 정도다. 다만 라온퍼스트는 폐활량에 강점이 있다. 박 조교사는 “보통 3000m 이상 새벽 구보와 속보를 하면 암말들은 숨이 거칠어진다. 근데 라온퍼스트는 훈련 뒤에도 호흡이 가쁘지가 않는 걸 보면서 생각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라온퍼스트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번까지 대상경주에서 3연속 우승했다. 경마계에서는 서울과 부경 통합 여왕을 가리는 퀸즈투어에서 첫 국산마의 석권 사례가 나올지도 기대하고 있다. 퀸즈투어 10년 역사상 투어를 석권한 경주마는 감동의바다(2014년·미국)와 실버울프(2019년·호주)로 모두 외국 말이었다. 올해 퀸즈투어는 동아일보배에 이어 뚝섬배, KNN배, 경남도지사배로 이어진다.
라온퍼스트와 우승을 함께한 최 기수는 “말을 믿고 달렸다. 컨디션도 좋았고, 마방에서 준비도 잘 됐더라. 이 말에게 1800m 대상경주는 처음이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고 강조했다.
라온퍼스트는 이날 무리하게 선두 경주마 사이를 파고들지 않았다. 13마리의 말이 참여한 이번 경주에서 라온퍼스트는 12번 바깥쪽 번호를 받았다. 통상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초반부터 안쪽으로 파고들어 경주 거리를 최대한 단축하기 마련이지만 최 기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말이 이미 외곽으로 밀린 상황이라 무리해서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라온퍼스트가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줬다”며 기뻐했다. 최 기수는 4코너를 돌자마자 직선 주로에서 과감하게 전력질주하며 우승을 따냈다.
이날 우승으로 최 기수는 개인 통산 두 번째 동아일보배 대상경주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됐다. 그는 2009년 동아일보배 대상경주(1400m)에서도 암말 당대특급(당시 4세)과 함께 첫 우승을 일궜다. 21년 경력의 최 기수는 이날 개인 통산 856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한편 동아일보배 대상경주가 열린 이날 서울경마공원에는 약 1만5000명의 관중이 몰렸다. 대상경주 매출은 33억7400만 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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