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투어 최다 17시즌 연속 출전
철저한 자기 관리 대명사
진정한 프로 정신의 본보기 찬사
은퇴 후 주니어 멘토로 제2인생
홍란(36)은 2005년 19세 나이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했다. 당시만 해도 17시즌을 연속으로 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20대를 관통해 30대 중반에 접어들도록 줄곧 필드를 지킨 그는 꾸준함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렸다.
한국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 장식한 레전드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홍란은 2022시즌 개막을 눈앞에 둔 요즘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무척 낯설다. “불과 지난해 이맘 때만해도 KLPGA 선수 세미나는 잘 했는지, 바뀐 규정은 더 없는지 후배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동계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시즌 시작을 손꼽아 기다리던 때였겠죠. (은퇴하고 나니) 이젠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지내려 합니다.”
올해 36세가 된 홍란은 17년 동안 KLPGA투어에 개근하며 최다 출전 기록(356개 대회), 최다 커트 통과(287개 대회), 최다 라운드 플레이(1043라운드) 등 갖가지 역사를 썼다. 정규투어에서 10년 이상 연속으로 활동한 선수들의 모임인 ‘K-10 클럽’에도 맨 먼저 가입했다. 통산 상금은 24억 원에 이른다.
2008년 KB국민은행 스타투어 2차 대회에서 첫 우승을 신고한 뒤 그해 제7회 레이크사이드 여자오픈에서 다시 정상에 올랐다. 2010년 S-오일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에서 개인 통산 3승째를 거둔 뒤 8년 가까운 무관 끝에 2018년 브루나이 레이디스오픈에서 다시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통산 우승은 4차례. 선수 수명이 짧은 KLPGA투어에서 20대와 30대에 모두 우승한 선수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지난 시즌 상금 순위 78위에 머물며 17년 내내 지켜온 시드를 놓친 그는 은퇴를 결심했다.
“아빠 캐디와 합작한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아”
홍란은 투어 생활을 정리한 소감에 대해 “참 많은 것에 감사하다고 느꼈다”며 “많은 분들의 후원, 응원,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행운이 많이 따랐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프로로서 받을 수 있는 상과 역할도 두루 경험해 봤기에 후회는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투어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에게 순간순간이 다 기억에 남을 터. 그래도 ‘명장면 톱3’를 뽑아달라고 했다. 3개만 꼽으려니 아쉽다는 그는 2번째 우승 무대였던 2018년 레이크사이드여자오픈에 엄지를 세웠다. “첫 우승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캐디를 해주시면서 처음 우승을 합작했던 대회였고,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아빠랑 만들어낸 추억이 생생했고 승리까지 가졌다는 게 진짜 값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2018 브루나이 여자오픈 우승. 그는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였고 내가 더 이상 투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나 고민할 때 찾아온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삼천리 소속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 됐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세번째로는 2014년 KLPGA챔피언십을 소개했다. 홍란은 연장전 패배로 2위에 머물렀다. “투어에서 연장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준우승이 오히려 발전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만약 그 대회에 우승해서 5년 시드를 받았다면 17년 동안 투어를 못 뛰었을지도 몰라요.” 5년 출전권을 보장받았다면 현실에 안주해서 선수 생활이 단축될 수 있었다는 의미. 그의 성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본인이 가장 의미 있게 여기는 기록은 단연 ‘17시즌 연속 시드 유지’다. “가장 애착이 갑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기록이 가장 늦게 깨지기를 바랍니다. 이 기록이야 말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홍란이 가졌던 마음가짐, 체력관리 등 모든 걸 표현해주고 내 자신에게 칭찬할 수 있는 값진 선물 같습니다.”
김재열 SBS 골프 해설위원은 “롱런을 가능하게 했던 철저한 자기관리는 모든 선수의 모범이 될 만하다”며 “골프에 대한 열정과 사랑,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프로페셔널 정신을 보여준 본보기”라고 평가했다.
지유진 삼천리 골프단 감독은 “성실하고 현명했던 선수”라며 “기록은 언젠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17년 시드 유지는 부상도 없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깨기 어려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스폰서와 오랜 관계가 내게는 행운”
홍란은 메인 스폰서인 삼천리, 용품계약을 한 야마하(오리엔트골프), 의류업체 엠유 등 후원기업과 모두 10년 안팎의 장기간 한 배를 탔다. 주위의 부러움을 살 만한 대목. 홍란 역시 “진짜 운이 좋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바로 스폰서와의 관계”라며 “선수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스폰서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저 같은 경우는 모든 스폰서 분들이 든든하게 함께 해주셨고 또 함께 기록을 새운다는 마음으로 지원을 해주셨던 거 같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또 “늘 좋은 성적만 거둔 게 아닌데도 심적으로 불안해하지 않도록 항상 응원과 격려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저 또한 힘을 내서 멋진 기록을 함께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말로 표현이 부족 할 만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홍란은 타이틀리스트도 17년 내내 스폰서가 돼 주셨다고 강조했다.
야마하를 수입하는 오리엔트골프 이동헌 대표는 “홍란 프로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지녔다. 성인이 돼도 부모의 등 뒤에 숨는 프로가 있는가 하면 계약 조건을 조율할 때도 혼자 회사를 찾아 꼼꼼하고 세심하게 검토했다”고 말했다.
오리엔트골프는 2014년부터 후원해 온 홍란이 중요한 기록을 세웠을 때 축하 자리를 마련하며 마치 회사 직원의 경사처럼 함께 기뻐해 줬다. 홍란은 “야마하는 든든한 지원군 같았고 오래 같이 하고 싶은 회사라고 생각했다”며 “클럽은 골프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자신감의 원천이다. 제 기록의 거의 야마하와 함께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전했다.
“넓게 멀리 보는 후배들이 많이 나와 주기를”
앞으로 홍란은 삼천리가 여자 골프 꿈나무 육성을 위해 운영하는 ‘삼천리 골프 아카데미’에서 멘토로 활동할 계획이다. 그는 “당분간 골프 선수 홍란이 아닌 사람 홍란을 찾기 위해 휴식도 하고 건강도 챙기려 한다”며 “주니어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차차 제 역할을 찾아가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주니어 시절에는 무엇보다 여러 가지 시도와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프로에서는 경험이 아닌 실력을 보여주고 성적으로만 평가되는 곳이기에 주니어 때는 경기에서 실패할 수도 있더라도 공이나 클럽을 다양하게 사용해 보거나, 어느 순간 긴장이 되는지 어떤 코스를 좋아하는지도 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란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은퇴 경기도 치를 계획이다. 아직은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은퇴 경기 전에 1,2개 대회에 출전한 뒤 고별 무대에 오를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얘기. 그래서 운동도 재개했다. “골프선수라면 부상이 없는 경우가 드물어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운동은 꾸준하게 하고 있어요. 오히려 골프가 아닌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라서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해서 헬스장을 주 2~3회 정도 이용하고 있고요. 은퇴 경기도 남아 있으니 골프 연습도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홍란은 지난 연말 KLPGA 시상식에서 신설된 ‘아름다운 기부상’ 첫 수상자가 됐다. 1000라운드 출전을 기념해 1000만 원을 KLPGA에 기부하는 등 평소 선행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는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지금 너무나 긴장되면서 또 설레는 마음일거 같다. 준비 많이 한 만큼 기량 잘 보여 줄 수 있도록 시즌 전에 참가 대회 수나 스케줄을 잘 계획하고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좀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을 겁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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