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KS)에 오른 두산은 올 시즌도 KS를 향한 ‘가망 있는’ 경쟁을 하고 있다. 29일 현재 13승 9패, 3위로 상위권 경쟁을 하고 있다.
한 팀이 오랫동안 경쟁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해가 바뀌며 잘 하던 선수들이 나이가 들어 예전만 못해질 때가 있고, 주축이나 코칭스태프들은 잘 하는 팀의 노하우를 조금이라도 얻으려 하는 다른 팀들의 주요 타깃이 된다. 2015년부터 두산이 매년 쉬지 않고 겪은 상황이다. 선수든 감독이든 ‘두산 출신’ 없는 팀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때마다 두산은 내부 육성을 통해서든, 자유계약선수(FA) 보상선수를 잘 지명해 전력누수를 잘 메워왔다.
시즌 초반이지만 이 기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2021시즌이 끝난 뒤 두산은 ‘S급’으로 평가받는 김재환(34), 박건우(32·NC)가 동시에 FA 자격을 얻었는데 김재환을 잡았지만 박건우를 놓쳤다. 계약서에 사인한 총액이 김재환이 115억 원, 박건우가 100억 원이다보니 둘을 동시에 잡기 불가능했다. 박건우의 공백에 따른 전력약화가 우려됐지만 2013년 두산 유니폼을 입고 10년 가까이 눈물 젖은 빵을 먹던 김인태(28)가 만화처럼 등장했다. 통산 타율이 0.253에 불과했던 김인태는 박건우의 이적으로 국가대표라인으로 꼽혀온 두산 외야진에 오랜 만에 ‘티오’가 나자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올 시즌 김인태의 활약만 보면 떠난 박건우가 아쉽지 않다. 22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한 김인태는 타율 0.337, 출루율 0.421, 득점권 타율 0.412로 맹활약 중이다. 박건우의 올 시즌 기록(타율 0.349, 출루율 0.402, 득점권 타율 0.333)에 견줘 전혀 밀리지 않는다. 요즘 많이 따지는 가성비를 고려하면 올해 연봉 1억4000만 원을 받는 김인태(박건우는 19억 원)의 압승이다.
시즌 초반 선전에 대해 김인태는 “기술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시즌부터 경기를 많이 출전하며 경험이 쌓였는데 올 시즌 들어 더 꾸준하게 경기에 출전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더 깊게 파고들자 “대타는 한번으로 평가받는데 선발은 첫 타석에서 안타를 못 쳐도 2번째, 3번째 기회가 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그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태형 두산 감독도 같은 생각이다. 김인태의 활약에 대해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오랜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긴 거 같다”고 했다. 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팀 내에서 타격감이 가장 좋은 김인태를 아예 리드오프로 내세우는 중이다. 부담이 될 만도 하지만 마치 준비됐다는 듯 1번 타순에서 타율 0.341(41타수 14안타), 출루율 0.449로 맹활약 중이다.
10년 가까운 2군, 1군 백업 생활을 해온 데 대해 김인태는 “그동안 성을 쌓고 있던 것 같다”고 표현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 “조금만 버티자”는 주변의 격려에 10년 가까이, 다쳐도 ‘못 뛸 정도’가 아니라면 참고 뛰다 아픔에 둔감해질 만큼 버틴 세월을 ‘성 쌓기’로 비유한 것이다. 덤덤한 목소리로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제법 단단하게 쌓아 올렸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그 성을 여러 사람 앞에 보여주는 일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김인태는 ‘꾸준하게’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1라운드 4순위로 지명된 특급유망주답게 대타로 활약하던 시절 ‘하이라이트 필름’을 몇 차례 연출하며 팬들을 설레게 했지만 꾸준하지 못해 다시 끊임없이 보완해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시즌 초를 보내고 있는 김인태에게 주어진 과제도 사실 ‘꾸준함’이다. 김인태도 “지금 같은 활약을 꾸준히 해야 그간 내가 쌓아 올린 성이 단단했다는 걸 사람들이 믿어줄 거다. 그래서 꾸준하게 잘 하도록 노력하겠다. 그래야 팀에 도움이 되고 그러면 팀 성적도 올라갈 거다”라고 말했다.
두산의 8년 연속 KS 진출의 성패 여부도 데뷔 9년 만에 빛을 보기 시작한 김인태의 꾸준함에 달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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