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미드필더 황인범(26·FC서울)은 자기 축구인생의 시곗바늘이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충남기계공고를 졸업한 황인범은 2015년 K리그 대전에서 프로 데뷔를 한 뒤로 아산(군복무)을 찍고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의 캐나다 연고팀 밴쿠버 화이트캡스, 러시아 리그의 루빈 카잔을 거쳐 올해 잠시 FC서울에 둥지를 튼 프로 8년차다. 그동안 여러 팀을 거쳤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지만 스스로는 아직 축구선수로 자랑할 만한 게 없다고 여긴다.
FC서울의 팀 훈련장인 경기 구리시 GS챔피언스파크에서 최근 만난 황인범은 “월드컵 무대에 서고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밟는 게 꿈이다. 그래서 해마다 시즌을 시작할 때 내 축구인생은 시작도 안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황인범이 잠시나마 FC서울을 택한 것도 이런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경쟁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카잔 소속이던 황인범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축구연맹(FIFA)의 특별규정을 적용받아 일시적으로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얻어 4월 초 서울과 2개월 단기 계약을 했다.
황인범은 벤투 감독의 한국대표팀 사령탑 데뷔전이던 2018년 9월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부터 계속 중용을 받아 ‘벤투호의 황태자’로 불린다. 벤투 감독 부임 이후 A매치 31경기를 뛰며 4골을 넣었기 때문에 11월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 본선 멤버에도 뽑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황인범은 주위의 평가와 달리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있다. 그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경기를 뛰기는 했지만 본선 무대는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벤투 감독의 최종 낙점을 받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황인범은 “많이 움직이고 공간을 만들어 내면서 빌드업을 하는 안익수 감독님의 축구가 나와 잘 맞는 것 같다”며 서울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에서 미드필더로 뛰고 있는 선배 기성용(33)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상대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에 위치하는 황인범으로선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이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에 후방 빌드업에 관여하지 않고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인범은 2월 전 소속팀 카잔의 전지훈련에서 엄지발가락을 다쳐 두 달 넘게 재활에 집중하고 있어 아직 공식 경기를 뛰진 못했지만 기성용의 ‘형님 리더십’을 배웠다. 그는 “요즘 형의 플레이를 보면 어떻게 저리도 많이 뛸 수 있을지 믿기지가 않는다. 성용이 형의 플레이가 어린 선수들에게도 자극이 돼 팀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나간다”고 했다.
3일부터 팀 훈련에 정상적으로 참가한 황인범은 “서울에서 얼마나 많은 경기를 뛸지는 모르지만 감독님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면서 최대한 많이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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