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최하위 컷탈락
프로 대회 연이은 노크
흥행카드, 민폐 논란까지
“부족함을 채우는 과정에 감사”
20오버파 92타, 13오버파 85타.
‘코리안 특급’ 박찬호(49)가 이틀 동안 적어낸 골프 스코어다. 언뜻 보면 평균 이하 실력의 주말골퍼 수준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공동 선두와 40타차
박찬호는 13일 경기 여주시 페럼클럽(파72)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우리금융 챔피언십에서 2라운드 합계 33오버파 177타를 기록해 컷탈락했다. 2라운드까지 마친 141명의 선수 가운데 최하위였다. 리더보드에서 자신보다 바로 한 단계 위인 140위 김태우(166타) 보다 11타를 더 쳤다. 커트 통과선인 2오버파에는 무려 31타가 부족했다. .
이날까지 공동선두 그룹(7언더파)을 형성한 김태호, 최민철, 김민규와는 40타 차다. 박찬호는 36홀을 도는 동안 공동선두 선수들보다 매홀 1타 이상을 친 셈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는 한 라운드 합계가 규정타수 보다 16타 이상 많으면 자동으로 다음 라운드에 출전할 수 없다. 이 규정이 적용됐다면 박찬호는 1라운드 종료 후 가방을 싸야 했다.
●골프협회 공인 핸디캡 3
이번 대회에 박찬호는 추천선수 자격으로 출전했다. 코리안투어 규정에 따르면 대회 타이틀 스폰서는 출전 선수 규모의 10% 이하로 프로 또는 아마추어 선수를 추천할 수 있다. 박찬호는 지난해 4월 대한골프협회의 공인 핸디캡 3 이하 증명서를 받아 추천 자격을 갖췄다.
박찬호는 우리금융그룹의 광고 모델로 활동한 인연도 있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우리금융그룹 로고가 새겨진 상의를 입고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격한 실력 차이를 드러낸 박찬호는 마치 어릴 적 놀이에 등장하는 ‘깍두기’ 신세라도 된 듯 보였다. 1라운드 5번 홀(파5)에서는 세 차례 티샷 OB를 내면서 규정타수 보다 6타를 더 친 11타를 적었다. 다음 날 이 홀에서 그는 파를 낚았다. 전날 악몽을 떠올리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찬호의 코리안투어 도전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2018년 휴온스 셀러브리티 프로암을 시작으로 2019년 휴온스 엘라비에 셀러브리티 프로암, 지난해에는 군산CC 오픈과 야마하 아너스K 오픈에 나선 바 있다. 군산CC오픈에서도 1, 2라운드 합계 29오버파 171타를 기록해 대회를 마친 153명 가운데 153위에 자리했다. 스릭슨(2부)투어에도 참가했지만 예선은 통과하지 못했다. 32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력을 갖췄지만 정교함과 코스 매니지먼트 능력이 떨어진 탓이다.
● 까다로운 코스에서 진땀
박찬호의 민망한 성적은 골프 관계자나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마추어 수준인 박찬호를 출전시키면서 생계가 걸린 프로골프 선수 한 명이 출전할 수 없게 됐다는 비판이 있었다. 민폐에 가까운 플레이가 다른 동반자의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본업인 야구에 전념해 달라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침체를 겪고 있는 코리안투어를 향한 관심을 끌기 위해 박찬호의 존재감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투 머치 토커’로 유명한 그는 골프 대회 때마다 이런저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그에게 스코어나 순위 자체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는 해석도 흘러나온다.
7200야드가 넘는 긴 코스와 까다로운 코스 세팅에서 누구보다 박찬호는 큰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주 GS칼텍스 매경오픈 챔피언 김비오도 중간합계 6오버파 150타로 3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게 골프다.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켰다고 한다.
● “마음 같이 안 되는 게 골프”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에 빛나는 박찬호는 방송 프로그램 출연해 “야구 선수 은퇴 후 우울했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분야가 골프였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는 “또 다시 한계에 도전하고 싶어서 프로 골퍼에 도전해 보고 싶다. 이게 진짜 뭐냐면 9회말에 던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도전하는 동안 나를 알아가는 수행이 되고 나를 하나씩 알아가면서 삶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부족함을 알았을 때 더욱 노력하고 만족을 느낄 때 감사함이 깊어진다”는 말도 남겼다. 박찬호도 어느새 50을 바라보고 있다. 내년부터는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챔피언스투어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를 일.
세 딸을 둔 박찬호는 골프를 셋째 딸에 비유했다. “너무 사랑스럽고 좋은데 마음같이 안 된다.” 초반 대량 실점으로 강판당한 이번 대회를 통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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