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해도 머니다. 돈 얘기는 늘 흥미롭다. 수(數)포츠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손흥민(토트넘)이 아시아인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돈방석에 앉은 서른 살의 그가 앞으로 얼마나 벌지 관심사다. 국내외 스포츠 스타의 몸값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40년 전으로 돌아가 국내에 프로야구가 탄생한 1982년. 야구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탄생한 프로 스포츠답게 프로화 역시 가장 잘 진행됐다. 프로화라는 게 좋게 말하면 시장경제이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규제였다. 두 개의 상반된 가치가 공존했다. 최저연봉제(600만원)를 도입하는 등 실업팀 연봉의 몇 배를 지급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선 멸종된 지 오래인 연봉상한선(2400만원)과 인상상한선(25%) 등 몸값 폭등을 막을 암묵적 보완책을 마련했다. 타자는 실업 홈런왕 김봉연(해태), 투수는 미국 마이너리그 밀워키에서 맹활약하고 돌아온 박철순(OB)이 기준점이었다. 모든 선수는 둘의 연봉 아래에 포진했다. 당시 2400만원이면 강남 30평형 아파트를 사고도 남았다. 부동산 가치가 요즘보다 낮을 때 얘기다.
●이후 프로야구는 최동원(83년·롯데), 선동열(85년·해태)이란 불세출의 투수가 입단하면서 일찌감치 강력한 백신을 맞게 된다. 최동원은 1981년 토론토로부터 당시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과 비슷한 18만5000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억3000만원)를 제시받았다. 선동열은 1984년에 LA다저스로부터 50만 달러(당시 약 4억원) 제안을 받았다. 선동열의 경우는 외신 기사가 없고, 몇 년간 몸값인지 확실치 않긴 하다. 어찌됐든 둘은 이 기준을 가지고 소속 구단과 끝없는 연봉 투쟁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하지만 구단들은 전두환 정권이 만든 병역특례자 5년간 국가대표 봉사 규정을 앞세워 매년 방어에 성공했다. 지나치게 뛰어났던 둘은 결국 모든 선수들의 연봉 전봇대가 되는 역설을 낳았다.
●프로야구는 1991년에야 선동열에게 첫 1억 연봉을 안겼다. 혹사의 아이콘이었던 최동원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직전에 은퇴했다. 선동열은 국내에서 활약한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1년간 10억2250만원을 버는 데 그쳤다(물론 인센티브, 보너스, 그리고 이면계약은 있었을 거다). 일본 진출 첫 해인 1996년 주니치에서 받은 1년 소득인 1억5000만엔(계약금 5000만엔 포함)에도 못 미쳤다. 그가 주니치에서 4년간 번 금액은 무려 7억엔(당시 약 80억원).
지나친 규제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994년 박찬호(LA다저스)를 시작으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붐을 이루면서 국내 프로야구는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선수들의 연봉 대박을 불러온 자유계약선수 제도가 1999년 초에야 도입됐지만 그해 최고 연봉 선수인 정명원(현대)의 몸값은 1억5400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외환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음에도 강남 30평형 아파트를 사기엔 많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내 프로 스포츠 시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는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축구계가 급성장한 계기가 됐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최초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는 등 축구 선수의 해외 입단은 이때 봇물을 이뤘다. 선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구단들도 만성적자가 모기업의 마케팅 비용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연봉이 사실상 공개돼 있고 잘 정리돼 있는 프로야구를 예로 들면 올해 1군 선수 527명의 평균 연봉은 역대 최고인 1억5259만원이다. 1982년 1215만원의 13배 수준이다. 최고 연봉 선수는 김광현(SSG)으로 4년 총액 151억원(인센티브 20억원 포함)에 계약했는데 내년 도입될 샐러리캡(구단 연봉총액상한제)을 피하기 위해 올해 보장연봉만 81억원을 당겨 받았다. 사상 최고액으로 팀 선배 추신수(27억원)의 기록을 훌쩍 깨버렸다. 81억원은 LG KIA KT 롯데 키움 한화의 선수단 연봉보다 많다. SSG은 외야수 한유섬에게도 지난해보다 1233% 인상된 24억원(4위)을 안겨 연봉 총액은 146억원, 평균 연봉은 2억7044만원에 이른다.
●프로축구는 지난해 세징야(대구)가 14억8500만원으로 전체 1위, 김보경(전북)이 13억원으로 국내선수 1위를 차지했다. 프로농구 최고 연봉은 송교창(KCC)의 7억5000만원(인센티브 2억2500만원). 프로배구 역시 한선수(대한항공)의 7억5000만원. 여자 선수로는 골프의 박민지(NH투자증권)가 지난해 상금으로만 15억2137만원을 벌어 신기록을 세웠다. 국내 프로축구는 시즌이 끝난 뒤 출전수당과 보너스 등을 합쳐 연봉을 발표한다. 농구는 인센티브가 포함된 금액. 남자 배구는 야구와 같이 순수 연봉이다. 한편 리그 오브 레전드(LOL·일명 롤) 세계 최강자인 프로게이머 페이커(본명 이상혁·T1)는 놀랍게도 대략 40억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롤은 올해 항저우 아시아경기 정식 종목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전체 소득은 보통 연봉과 기타 수입으로 나뉘는데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19일 발표한 세계 스포츠 스타 소득 랭킹을 보면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가 1억3000만 달러(약 1630억원)로 톱을 차지했다. 메시는 연봉을 포함한 경기 관련 수입으로 7500만 달러, 스폰서십과 광고 출연 등으로 5500만 달러를 벌었다. 2위는 미국프로농구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로 1억2120만 달러(약 1520억원). 경기 수입은 4120만 달러에 그쳤지만 8000만 달러를 외부에서 벌었다. 둘은 일당으로 4억원이 넘었다. 포브스가 발표한 지난해 소득왕은 격투기 선수 코너 맥그리거로 1억8000만 달러(약 2250억원).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 등 골프 선수가 최근 들어 리더보드에서 빠진 게 눈길을 끈다.
●손흥민에 포커스를 맞춰보면 그는 지난해 7월 주급 20만 파운드에 2025년까지 재계약했다. 연봉으로 약 165억원이다. 계약 당시엔 리그 공동 8위였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15위권이다. 역대 한국 선수 가운데는 4위에 해당한다. 추신수가 2020년 텍사스에서 2100만 달러(약 263억원), 류현진(LA다저스)이 올해 2000만 달러(약 250억원), 박찬호가 2006년 샌디에이고에서 1550만 달러(약 195억원)를 받았다. 손흥민은 골든 부츠를 안았지만 계약에 묶여 있어 당분간 연봉 인상이 힘들다. 하지만 경기장 밖 소득까지 합하면 위의 세 선수를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손흥민은 득점왕이 되기도 전인 2020년 말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경제적 파급효과 2조원이라는 평가를 받아 방탄소년단, 임영웅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제 기업의 러브콜이 더 쇄도할 것이다. 정규리그는 물론 챔피언스리그, FA컵 등 출전 수당과 상금 보너스도 기다리고 있다. 바야흐로 손흥민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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