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3-7-10-7-8-8. 프로야구 10구단 체제가 완성된 2015년부터 올해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8년간 팀 순위다. 야구도시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는 최고 인기구단 중 하나다. 야구 실력만 빼곤 모든 것을 갖췄다. 올해 롯데는 시즌 개막 후 한 달여간 SSG에 이어 2위를 질주했다. 팬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오래가진 못했다. 4월 승률 0.609를 자랑하며 지난달 6일까지 단독 2위였지만 이달 초 8위까지 추락한 뒤 회생 기미가 없다. 5월 이후 승률은 반 토막인 0.343이다. 어느 해보다 강렬하면서 허무한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 롯데의 블랙아웃
롯데는 현 10개 구단은 물론 그동안 생겼다 사라진 수많은 구단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지 못했다. 최동원이 4승을 혼자 따낸 1984년, 염종석을 앞세운 1992년 두 번 챔피언이 됐지만 이후 29년간 우승을 못했다. 1992년생 아기는 30세가 됐고, 서른이던 청년은 환갑을 맞이했다. LG가 1994년 이후 27년간, 한화가 1999년 이후 22년간 팬들의 갈증을 풀지 못한 채 뒤를 잇고 있다. 롯데 LG 한화 팬이 다른 팬에 비해 좀 더 역동적이란 것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롯데는 한술 더 떠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2000년대 들어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에 진 게 최근 일이다. 이 불명예 순위도 LG(2002년), 한화(2006년)가 뒤를 잇고 있다. 롯데는 40년간 단일 리그 기준 정규시즌 1위를 한 번도 차지 못한 팀이기도 하다. 반면 최다 우승 1위 KIA(11회)는 김응룡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해태 시절인 1986~89년, 2위인 삼성(8회)은 류중일 감독이 이끈 2011~14년 4년 연속 우승컵을 안았다. 3위인 두산(6회)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3회 우승)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김태형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첫 해부터 일어난 일이다.
● 메이저리그의 4대 저주
야구는 물론 스포츠에는 수많은 저주 시리즈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미국 메이저리그의 4대 저주이다.
우리나라보다 100년 이상 역사가 오랜 만큼 저주의 기간도 비교 불가다. 보스턴은 원조 이도류(二刀流·양 손에 칼 또는 검을 든 검법)인 투타의 신 베이브 루스를 1920년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 하면서 1918년 이후 2004년까지 86년간 우승을 못하는 밤비노(루스의 애칭)의 저주에 시달렸다.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미국 3대 도시인 시카고의 컵스는 염소의 저주(108년), 화이트삭스는 블랙삭스의 저주(88년)를 푸는데 1세기가 걸렸다. 73년 된 클리블랜드 와후 추장의 저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0%인 6개 구단은 창단 후 여태 우승을 못했다. 텍사스는 1961년부터 51년간, 밀워키는 1968년부터 44년간, 샌디에이고는 1969년부터 43년간 무관이다. 최근에 휴스턴(1962년 창단)이 55년만인 2017년, 워싱턴(1969년 창단)이 50년만인 2019년 첫 우승반지를 꼈다. 국내에선 키움이 2008년 창단 후 13년간 우승 못한 게 최장 기록이다. 쌍방울(1991~99년)은 9년간 무관이었지만 대를 잇는 기업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부산 스포츠의 동반 몰락
다시 롯데로 돌아가 보자.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해설위원 시절 LG 롯데 KIA(엘롯기)를 편애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허 총재의 설명은 간단명료하다. 팬이 많은 구단이 잘해야 야구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허 총재 취임 첫 해인 올 시즌 성적표는 괜찮은 편이다. LG가 3위, KIA가 4위에 올라 포스트시즌 진출 사정권에 있다.
문제는 역시 롯데다. 롯데 탓인지 부산의 다른 프로 스포츠도 암흑기를 맞고 있다. 프로축구단 부산 아이파크는 2020년 시즌 후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강등됐다. 지난해 여기에서도 5위에 머물더니 올해는 꼴찌 바로 위인 10위(3승 5무 11패)다. 부산 축구는 대우 로얄즈 시절인 1984년, 87년, 91년, 97년 4회나 정규리그에서 우승했지만 이후 무관이다.
남자 농구와 남녀 배구팀은 아예 없다. 남자 농구는 KT가 KTF 시절인 2003년부터 부산에 뿌리를 내렸지만 지난해 수원으로 이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 팬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입장문을 냈지만 차 떠난 뒤 손 흔든 셈이었다. 부산 농구는 프로 원년인 1997년 KIA가 우승하면서 전성기를 맞았지만 한때였다. 프로농구는 구단의 잦은 연고지 이전이 흥행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그나마 부산은행이 2019년 창단한 여자농구단 BNK 썸이 지난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게 위안거리. 정규시즌 성적 12승 18패로 6팀 중 4위로 턱걸이해 아직 갈 길이 멀다.
● 윌리엄 펜의 저주
미국 6대 도시 필라델피아는 부산과 닮았다. 필라델피아는 펜실베이니아 주를 건설한 윌리엄 펜을 기려 1871년 신축한,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청 건물(167m) 꼭대기에 11m 크기의 동상을 세웠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1987년 이보다 높은 288m 고층 빌딩이 들어서자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필리스(야구), 이글스(미식축구), 세븐티식서스(농구), 플라이어스(아이스하키) 등 연고 프로구단이 21년간 우승을 못하는 동반 부진을 겪었다. 팬들은 저주를 깨기 위해 2007년 신축한 297m 빌딩 옥상에 펜의 인형을 갖다 놓았다. 희한하게도 필리스는 200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고, 2018년에는 이글스가 창단 85년 만에 슈퍼볼 우승컵을 안았다.
● 롯데의 무관 징크스는 언제 풀릴까
롯데는 올해도 우승하지 못하면 30년을 꽉 채우게 된다. 부산은 축구와 남자농구에서도 지난해까지 24년간 축배를 들지 못했다. 이쯤 되면 필라델피아처럼 살풀이할 대상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다행히 하나 있긴 하다. 롯데는 1992년 우승 후 실업 최강 롯데 시절부터 써왔던 엠블렘을 교체했다. 영문 이니셜 L(롯데)과 G(자이언츠)가 겹쳐진 이 엠블렘은 1990년 LG가 MBC를 인수한 뒤 더 이상 쓰는 것을 고집하기 힘들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격이지만 하도 답답하니 롯데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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