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테니스 남자 단식 8강서
세계랭킹 13위 21세 시네르 꺾어
대회 4연패-7번째 우승에 한발 더
안방팬 응원 업은 노리와 준결승
대회 4연패를 노리는 ‘트리플 디펜딩 챔피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 대회 개인 7번째 우승을 노리는 패자(覇者)의 품격도 느낄 수 없기는 마찬가지. 테니스 역사에 손꼽히는 ‘위대한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35·세르비아·세계랭킹 3위)는 첫 두 세트 동안에는 야니크 시네르(21·이탈리아·13위)에게 연달아 세트를 내준 ‘좋은 선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승리를 코앞에 둔 바로 그 순간 ‘어린 왕자’가 머뭇거리자 ‘황제’는 주저하지 않았다. 조코비치는 결국 5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근교 올잉글랜드테니스클럽에서 열린 2022 윔블던 남자 단식 8강전에서 시네르에게 3-2(5-7, 2-6, 6-3, 6-2, 6-2) 역전승을 거두며 또 한 번 ‘뻔한 결말’을 썼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좋은 선수들 가운데 위대한 선수를 가리는 전쟁터에서 조코비치가 ‘황제는 어린 왕자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평했다.
윔블던에서 26연승을 기록한 조코비치는 “첫 두 세트 동안 시네르는 잃을 게 없었다. 나는 스스로 의심에 빠졌고 시네르는 점점 더 스스로를 믿었다. 다행히 경기는 5세트까지라 나도 반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면서 “3세트가 되니 시네르는 잃을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시네르의 정신적 부담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가운데 4대 메이저 대회만 5세트까지 경기를 치른다. 조코비치가 메이저 대회에서 세트 스코어 0-2로 뒤지다가 3-2로 역전한 건 이번이 7번째다. 지난해 프랑스 오픈 결승에서도 역시 ‘어린 왕자들’ 소속인 스테파노스 치치파스(23·그리스·5위)에게 0-2로 뒤지다 3-2로 역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조코비치가 ‘황제를 시해하려거든 아주 재빨라야 한다. 그러지 못할 거라면 아예 시도도 하지 말라’는 단순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조코비치도 본인이 ‘어린 왕자’였던 2006년에는 4회전에서 마리오 안치치(38·크로아티아)에게 2-3으로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뒤로 윔블던에서 치른 5세트 경기에서는 10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조코비치는 2013년 결승에서 앤디 머리(35·영국·52위)에게 0-3으로 패한 뒤 윔블던에서 48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0-3 패배를 당한 적이 없었다. 49번째 경기 만에 0-3 패배 위기를 맞자 사실 황제도 흔들렸다. 조코비치는 “테니스를 20년째 하고 있는 나도 늘 나에 대한 의심에 빠진다”고 말했다.
조코비치가 ‘평정심’을 되찾은 곳은 화장실이었다. 그는 “(2세트가) 끝난 뒤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코트)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혼자 힘이 되는 말(pep-talk)을 좀 했다”며 머쓱해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역대 공동 2위인 20번 우승을 차지한 ‘레전드 선수’가 화장실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 관중이 웃음을 터뜨리자 조코비치는 “진짜다”라며 함께 웃었다. 경기장에는 더 큰 웃음과 함께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조코비치는 8일 열리는 4강에서 캐머런 노리(27·영국·11위)를 만난다. 안방 팬들의 응원을 안고 뛸 노리가 조코비치를 이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8강에서 노리에게 2-3(6-3, 5-7, 6-2, 3-6, 5-7)으로 역전패한 다비드 고팽(31·벨기에·7위)은 “노리가 ‘인생 경기’를 선보이고 조코비치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노리가 이길 수도 있다)”고 전망하면서 이렇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노바크는 노바크다. 관중이 상대 선수를 응원할 때 더 잘한다. 완전 외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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