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투수는 혼자서 승리를 만들 수 없다. 무실점으로 호투해도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고, 수비 실책으로 실점해 잘 던지고도 패전투수가 될 수도 있다.
10일 SSG 랜더스의 ‘에이스’ 김광현(34)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자신이 경기를 주도했지만 이날 만큼은 컨디션이 썩 좋지 못했는데, 야수들의 도움 덕에 시즌 10번째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김광현은 이날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KT 위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동안 93구를 던져 7피안타(1피홈런) 2볼넷 5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이날 김광현은 선발투수가 승리를 따내기 위한 최소요건인 5이닝만을 소화하고 물러났다. 이날까지 올 시즌 18번째 등판을 한 김광현이 6회 이전에 마운드에 내려간 것은 6월7일 NC 다이노스전(5이닝 5실점)과 7월2일 KIA 타이거즈전(3⅔이닝 무실점) 두 경기 뿐이었다. 이 중 KIA전은 헤드샷에 의한 퇴장이다.
5이닝동안 던진 공이 93구라는 것에서 볼 수 있듯 김광현의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다. 몰리는 공이 많아 상대에 여러차례 정타를 허용했다. 1회와 5회를 삼자범퇴 처리했지만 2~4회 3이닝동안 9명의 타자를 루상에 내보내면서 투구수가 늘어났다.
1회를 잘 넘긴 김광현은 2회 2사 후 김민혁에게 2루타를 맞으며 실점 위기에 놓였다. 여기선 박경수를 3구 삼진으로 잡아내며 스스로 위기를 벗어났다.
문제는 3회였다. 타선이 2회말 3점을 내줬는데, 3회 첫 타자 심우준에게 솔로홈런을 맞으면서 불안감을 보였다. 김광현은 1사 후 배정대에게 안타를, 앤서니 알포드에겐 볼넷을 허용하며 1, 2루에 몰렸다. 포수 이재원이 마운드를 방문해 진정시켰지만 쉽지 않았다.
김광현은 다음 타자 박병호에게 좌익수 방면의 안타성 타구를 맞았다. 타구 속도가 빨랐고 낮게 뻗어간 탓에 안타가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좌익수 후안 라가레스가 글러브를 땅에 붙이며 노바운드로 건져냈다. 빠졌다면 2명의 주자가 들어올 위기를 넘긴 호수비였다.
김광현은 이후 장성우에게 안타를 맞아 2번째 점수를 내줬지만 황재균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해 추가 실점을 막았다.
4회에도 수비 도움을 받았다. 선두 타자 김민혁에게 안타성 타구를 맞았는데, 2루수 김성현이 점프 캐치로 잡아냈다. 김광현이 2사 후 심우준, 조용호에게 연속 안타를 맞았고, 배정대에게 볼넷을 맞아 만루까지 몰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성현의 호수가 김광현의 실점을 막은 셈이다. 김광현은 만루 위기에선 알포드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김광현은 5회를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안정세를 보이는듯 했지만, 이미 투구수가 93개에 달하면서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김광현의 뒤를 이어받은 불펜진은 남은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베테랑 노경은이 6, 7회 2이닝을 소화했고, 문승원이 8회를 막았다. 이어 9회는 마무리 서진용이 틀어막으면서 4-2로 승리, 김광현의 10승을 책임져줬다.
타자들도 2회에만 3실점을 뽑는 집중력을 발휘했고, 3-2로 추격을 당한 뒤에 곧장 1점을 달아나는 등 에이스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김광현은 이날 승리를 거두면서 개인통산 146승(79패)째를 기록하게 됐다. 이는 KBO리그 역대 공동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인데, 김광현과 같은 승수를 올린 투수는 다름 아닌 ‘전설’ 선동열이다.
선동열이 30대 이후 마무리 투수로 전향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보다 많은 승수를 쌓은 투수는 역대 4명 뿐이다. 현역 중에선 양현종(KIA 타이거즈·157승)밖에 없다. 리그에서 5번째로 많은 승수를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큰 업적이며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김광현이 선동열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마지막 계단은 4번의 도전이 필요했다. 결코 쉽지 않았지만 동료들의 도움 속에 결국 ‘아홉수 징크스’를 벗어나고 대업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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