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와 롯데의 프로야구 경기. LG 중간계투 정우영은 3-1로 앞선 7회말 마운드에 올라 이렇게 생각했다. 전준우에게 볼넷을 내준 뒤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였다. 2구 만에 안타를 맞은 그는 던지던 자세까지 급하게 틀어봤지만 안치홍에게 안타, 정훈에게 희생 뜬공까지 내주며 역전을 허용했다. 당시 홀드 2위(22개) 정우영은 그렇게 패전 투수(시즌 3패)가 됐다.
정우영은 지금도 이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13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그는 “팀 동료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기고 있던 그 상황에서도 나는 내 공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안타를 맞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투구 자세에 변화를 줬는데 그러면서 혼란이 더 커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날부터 정우영은 팀 선배 김현수와 오지환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오랜 시간 자신의 위치를 지켜낸 선배들은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해서였다. 관찰 결과 정우영이 깨달은 건 이들이 4, 5타수 동안 안타 없이 물러나는 부진이 이어져도 자신의 타격 자세를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우영은 “그동안 성적이 안 좋아지면 공 던지는 팔 각도를 올리거나 내리며 ‘손장난’을 쳤다. 원래 던지던 각도가 아니다보니 내 싱커의 무브먼트만 떨어지고 장점이 사라졌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내 공을 믿고 꾸준하게 던져야 나도 ‘롱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팀 선배들이 이미 조언을 해줬던 내용이었다. 김현수는 “넌 생각이 너무 많다”고 장난스럽게 운을 떼며 “싱커 구위가 워낙 좋으니까 그것만 잘 던져도 타자들이 못 칠 거다”라고 말했고, 오지환은 “난 슬럼프가 와도 변화 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8월에만 홀드 7개를 쏟아내며 29홀드를 쌓은 정우영은 이달 15일 KT전에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시즌 30홀드를 기록했다. 지난해 27홀드로 2013년 이동현이 세웠던 구단 최다 기록(25홀드)을 넘어선 정우영은 21일 현재 31홀드로 매일 구단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정우영은 “내가 내 기록을 깨면 그게 구단 기록이 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스스로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된다”고 말했다.
정우영은 개인 첫 홀드왕에도 도전 중이다. 4홀드 차의 2위 김재웅(키움)이 당초 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지난달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하면서 정우영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정우영은 “원래 홀드왕 욕심까지는 없었다”면서도 “(김)재웅이 형이 빠지고 내가 1위로 올라서면서 ‘이제 뭔가 보인다’는 기대가 생겼다. 감독님이 믿고 자주 기용해주시는 만큼 더 많은 홀드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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