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누나’와 ‘장애 동생’을 3년 만에 이어준 마라톤 대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9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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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뛸 때마다 항상 동생 생각에 슬펐어요.”

8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서 만난 신주아 양(10)이 이렇게 말했다. 이날 2022 슈퍼블루마라톤에 참가한 신 양은 이번이 ‘다섯 번째이자 첫 번째’ 대회다. 그동안 동생 없이 네 번의 슈퍼블루마라톤을 달렸던 신 양이 이날 처음으로 사랑하는 동생과 함께 달릴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8일 열린 2022 슈퍼블루마라톤에 참가한 신주아 양과 동생 시환 군, 어머니 이혜연 씨(왼쪽부터).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와 롯데가 주최하고 동아일보사가 주관하는 슈퍼블루마라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달리는 마라톤 대회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며 장애의 벽을 허물자는 ‘슈퍼블루 캠페인’의 일환으로 개최돼 왔다. 2015년부터 열린 대회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2019년 이후 오프라인 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다. 신 남매가 3년간 함께 달릴 기회를 갖지 못했던 이유다.

신 양의 동생 신시환 군(7)은 복합성심장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심장장애와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은 뒤 줄곧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어머니 이혜연 씨(45)는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주아 양과 슈퍼블루마라톤에 나섰다. 장애가 없는 딸이 장애를 가진 동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지 않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코로나19가 터진 2019년에야 퇴원했다.

이날 휠체어에 몸을 싣고 나온 시환 군은 곁에 선 누나를 바라보며 방긋 미소지었다. 주아양도 “전 대회에는 동생 없이 달렸는데 이번에 같이 달리게 돼서 기분이 좋다. 그동안 시환이랑 정말 같이 뛰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아 양은 이날 휠체어를 끈 아버지 신영희 씨(44)의 도움으로 동생과의 슈퍼블루(5km) 레이스에 나설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슈퍼블루마라톤에 참가한 조진철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첫째 아들 조민규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아내, 둘째 아들과 함께 웃음 짓고 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주아 양의 가족처럼 장애인 자녀를 둔 가족 참가자가 많았다. 직장인 조진철 씨(52)도 발달장애를 가진 큰아들 민규 씨(25)와 슈퍼블루마라톤을 찾았다. 슈퍼블루마라톤은 이번이 네 번째 참가다. 아버지 조 씨는 “여기 참가하신 분들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허물자는) 대회 취지를 모두 알고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장애인 한분 한분이 여기서 장애인들을 마주보면서 생각에 작은 변화가 생겨나고,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큰 변화도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주재현 씨(26)의 어머니 신명순 씨(55)도 같은 마음이다. 신 씨는 “처음에는 장애인 부모회에서 제안을 했는데 대회 취지를 보고 슈퍼블루마라톤에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이 세 번째 대회인데 이제는 아들이 먼저 ‘가고 싶다’고 해서 매번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만 참가한 건 아니다. 비장애인인 두 자녀를 데리고 참가한 이화숙 씨(41)는 “내 주변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 나오게 됐다. 실제로 장애인들을 마주치고 함께 뛰다보면 ‘장애인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슈퍼블루(5km) 코스 우승자 백광영 씨.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청각장애를 가진 백광영 씨(36)에게는 이날 슈퍼블루마라톤이 뜻깊은 대회가 됐다. 슈퍼블루 코스를 17분46초 만에 주파해 우승자가 됐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청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백 씨는 가천대 전자공학과 3학년 당시 점점 강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고 좌절하면서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백 씨는 “마라톤을 하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다잡게 됐다. 달리기가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마라톤으로 생긴 긍정적인 마음을 토대로 백 씨는 올해부터 한양사이버대 전기전자공학과에 편입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백 씨는 올 6월 청각장애인과 일반인이 교류하는 러닝크루 ‘데프런’도 창립해 운영 중이다.

남자 10km 우승자 김은섭 씨.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남자 10km 우승자 김은섭 씨(31)도 대회 취지에 공감해 슈퍼블루마라톤에 두 번째 참가했다. 서울 연희초교 체육교사인 김 씨는 “방과 후 특수반 아이 8명을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 자폐를 가진 학생들인데 이 아이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며 “오늘 대회에서 장애인들을 많이 마주쳤는데 학교로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프코스 여자 1위 효우도 유미코 씨(일본).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하프코스 남자 1위 안대환 씨는 “장애인과 함께 달리면서 땀도 흘리고 공감하는 자리가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인으로 하프코스 여자부에 출전해 우승한 효우도 유미코 씨(42)도 “이 대회의 취지를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여러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뛰니 감동이 됐다”고 했다.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8일 슈퍼블루마라톤 홍보대사로 참여해 참가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스페셜올림픽코리아 제공
한편 이날 대회 출발 전에는 나경원 SOK 명예회장(59)과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52) 등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김 부회장은 “장애인과 비자애인이 함께하는 뜻깊은 행사에 홍보대사로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앞으로 (홍보대사로서)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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