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브 루스를 뛰어 넘은 두 스타의 MVP 경쟁
누가 돼도 한 명은 역대 최고의 2인자로 기록
필 미컬슨은 2인자다. 메이저 6승 포함 45승(역대 9위)을 거두고도 세계 랭킹 1위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5살 연하인 타이거 우즈와 전성기가 겹친 탓이다. 우즈는 미컬슨이 세계 2위에 처음 오른 1996년 데뷔해 통산 683주(약 13년1개월)를 집권했다. 참고로 1986년부터 집계된 골프 세계 랭킹에 현재까지 25명이 1위에 올랐다.
라파엘 나달은 한술 더 뜬다. 테니스 그랜드슬램 22승에 92개의 단식 타이틀을 따냈다. 통산 승률 0.833과 메이저 우승 횟수는 역대 최고다. 연말 기준으로 다섯 해나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5살 위인 로저 페더러와 1살 아래인 노박 조코비치의 그늘에 가려 대를 이은 2인자로 불린다. 현재 랭킹도 17살 아래인 같은 스페인의 카를로스 알카라스(19)에 이어 2위다. ‘흙신’으로 불리지만 하드코트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탓이다. 이들에게 굳이 예후를 하자면 세계 2인자 중 1인자라 할 만하다.
●메이저리그 순수 홈런왕 애런 저지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이들과 비견될 만한 레전드급 2인자의 탄생이 예고돼 있다.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와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이들은 나란히 전설 베이브 루스를 뛰어넘었다. 하필이면 같은 아메리칸리그 소속이어서 다음 달 중순 발표되는 MVP 투표에서 한 명은 고배를 마셔야 한다.
201cm, 128kg의 거구인 저지는 62홈런을 날려 아메리칸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1927년 루스의 60홈런을 34년 만에 경신한 로저 매리스(1961년 61개)를 61년 만에 넘어섰다. 이들 세 명은 모두 양키스 소속이다. 내셔널리그에선 배리 본즈(73개)와 마크 맥과이어(70개·65개), 새미 소사(66개·64개·63개)가 있었지만 모두 금지약물을 복용한 전과자다.
저지는 시즌 막판 페이스가 떨어지는 바람에 62홈런에 그쳤고 타격 트리플 크라운도 이루지 못했지만, 루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성적을 남겼다. 홈런, 타점(131개), 득점(133개), 출루율(0.425), 장타율(0.686)에서 압도적인 1위로 5관왕에 올랐다. 타율은 0.311로 2위, 안타는 177개로 5위. 시상은 하지 않지만 더 중요한 지표인 bWAR(승리기여도)가 10.59로 2위인 오타니(9.57·투수 6.14)를 제쳤다. 1957년 이후 본즈와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제외하면 저지보다 높은 bWAR를 기록한 선수는 없다. OPS(출루율+장타율)는 1.111로 요르단 알바레즈(휴스턴)와 1푼 가까이 차이가 난다.
●베이브 루스의 환생 오타니 쇼헤이
투타 겸업을 하는 오타니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MVP에 도전한다. 올해 역시 한 개의 타이틀도 없지만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다. 타자로선 올스타급, 투수로선 사이영상급 활약을 펼쳤다. 34홈런 95타점에 15승 평균 자책 2.33의 성적을 남겼다. 지난해 46홈런 100타점, 9승 평균 자책 3.18보다 방망이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투수로선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더구나 메이저리그 최초로 규정 타석과 이닝을 동시에 채운 선수가 됐으며, 15승-30홈런-200탈삼진을 한꺼번에 달성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저지와 오타니는 누가 돼도 역대급 MVP라 할 만하다. 저지가 타율까지 1위에 올라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다면, 또는 오타니가 한 개의 타이틀이라도 따냈다면 추가 기울었을 것이다. 현재 여론은 저지가 약간 앞선 듯하다. 오타니는 지난해 30명의 야구기자단으로부터 1위 표를 싹쓸이해 사상 11번째 만장일치 MVP에 올랐지만 뒷말이 나왔다.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오른 홈런왕 블라디미르 게레로(토론토)가 29명으로부터 만장일치급 2위에 올랐던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일각에선 게레로가 아시아 마켓에 MVP를 도둑맞았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올해 저지는 게레로보다 강력하다. 이에 게레로는 “올해 MVP는 당연히 저지”라고 주장한다. 저지는 신인왕과 홈런왕을 동시에 차지한 2017년 호세 알투베(휴스턴)에게 MVP를 아쉽게 놓친 동정표도 보유하고 있다. 당시 휴스턴은 전자기기를 사용한 사인 훔치기 의혹을 받았다.
●기자단 투표의 맹점
투표는 아무래도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 야구기자 전원이 참여하는 국내 MVP 투표는 초창기 억울한 2위를 양산했다. 1983년 재일교포 장명부는 30승을 거두고도 홈런 타점 2관왕 이만수에게 졌다. 반대로 이만수는 이듬해 타율까지 1위를 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지만 27승의 최동원(롯데)에게 영광을 내줘야 했다. 당시 기자단은 한국시리즈 MVP를 7차전 결승 홈런의 주인공 유두열에게 주는 대신 혼자 4승을 따낸 최동원에겐 정규시즌 MVP를 헌정했다. 한국시리즈 결과가 정규시즌 MVP를 결정한 셈이었다.
1985년에는 김성한이 전후기 통합우승을 이끈 삼성 F4 장효조 이만수 김시진 김일융을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제쳤다. 표가 분산된 탓도 있지만 최소한 이들 중 한 명이 MVP가 됐어야 했다. 1998년에는 타이론 우즈가 김용수와 사상 첫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 MVP를 차지했다. 그러나 1루수 골든글러브는 이승엽에게 뺏기는 촌극이 발생했다. 장명부와 우즈의 경우는 잘못된 ‘국뽕’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은 4명의 외국인 선수가 MVP로 배출됐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MVP 논쟁은 2001년이었다. 이치로는 미국 진출 첫 해인 2001년 타격, 안타왕에 올라 제이슨 지암비를 제치고 영광을 안았다. OPS는 지암비가 1.137(1위), 이치로는 0.838(27위)로 무려 3푼이나 차이가 났다. 지암비는 올해 저지보다 OPS가 높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박성광이란 개그맨의 유행어인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올림픽 금메달은 황영조가 땄지만 이봉주는 국민 마라토너란 칭호를 얻었다. 프로게이머 홍진호는 임요환에 막혀 준우승을 밥 먹듯이 했지만 오히려 그 브랜드를 이용해 예능에 진출했다. 영원한 국수(國手) 서봉수는 조훈현에 버금가는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토마스 에디슨보다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건 니콜라 테슬라였다. 소사는 맥과이어에 가렸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 60홈런 이상을 세 번이나 친 유일한 타자로 기록됐다. 국내에선 심정수가 비슷한 경우다. 그는 53홈런 142타점의 외계인급 활약을 하고도 타이틀 홀더가 못됐지만 투수들은 이승엽보다 심정수가 상대하기 더 어렵다고 했다.
미컬슨은 52세가 된 올해 세계 스포츠스타 중 가장 많은 돈을 벌 게 확실시된다. LIV 골프로부터 받는 이적료 2억 달러(약 2880억 원)가 입금되면 상금과 후원 수입이 줄어들더라도 정상에 오르는 데 문제될 게 없다. 지난해 1위는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로 1억3000만 달러였다. 36세인 나달은 특유의 꾸준함으로 팬덤을 보유하면서 꾸준히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페더러가 은퇴해 앞으로 그가 걷는 길이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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