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34도 땡볕, 4만5000석 경기장은 ‘거대한 에어컨’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4일 03시 00분


[2022 카타르 월드컵 D―7]
한국 조별리그 3경기 치르는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

섭씨 34도. 겨울을 눈앞에 둔 카타르의 11월은 여전히 더웠다. 지하철에서 내려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을 향해 걸어가는 10분 동안 등에 땀줄기가 흘렀다. 여러 대학 캠퍼스 사이에 자리해 이런 이름이 붙은 4만4530석 규모의 이 경기장은 한국이 우루과이(24일), 가나(28일), 포르투갈(다음 달 3일)과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세 경기를 모두 치르는 장소다.

2018년 러시아 대회까지 열린 21차례의 월드컵은 보통 6월 11일 전후에 개막했다. 올해 6월 11일 이 경기장이 있는 도시 라이얀은 42도까지 올랐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중동의 무더위를 피해 이번에는 ‘겨울 월드컵’을 열기로 했지만 대회 개막을 8일 앞둔 12일까지도 열사(熱砂)의 땅은 식을 줄을 몰랐다. 경기장 밖에서 1000명이 넘는 보안요원들의 예행연습을 지켜보는 동안 “덥다”라는 소리가 자꾸만 입 밖으로 나왔다.

한국의 조별리그 3경기가 모두 열리는 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는 막바지 잔디 정비 작업이 한창이다. 도하·라이얀=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
한국의 조별리그 3경기가 모두 열리는 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는 막바지 잔디 정비 작업이 한창이다. 도하·라이얀=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
그런데 경기장 안에 들어가자 대회 조직위원회가 ‘시원한 월드컵’을 치를 수 있다고 자신했던 이유가 느껴졌다. “행복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실외 에어컨’ 덕이었다. 경기장 입구에서 관중석으로 향하는 내내 천장에서 찬바람이 내려왔다. 관중석에 앉으니 발뒤꿈치 쪽이 서늘했다. 좌석 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었다. 또 자리마다 모두 구멍을 뚫어 엉덩이 쪽에서도 찬바람이 올라왔다.

그라운드도 시원했다. 관중석 아래쪽 벽에 설치한 노즐에서 나온 냉기가 그라운드 온도를 낮추고 있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잔디 상태를 확인하고 골대를 세우던 스태프 사이에서 더위에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던 이유다.

라이얀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30도를 훌쩍 넘지만 실외 에어컨이 가동된 스타디움 내 온도는 20∼22도를 유지했다. 대회 관계자 등이 이용할 3층 라운지 내부 모습. 도하·라이얀=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라이얀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30도를 훌쩍 넘지만 실외 에어컨이 가동된 스타디움 내 온도는 20∼22도를 유지했다. 대회 관계자 등이 이용할 3층 라운지 내부 모습. 도하·라이얀=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FIFA 등에 따르면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는 8개 모든 경기장은 이런 냉각 시스템을 통해 20∼22도를 유지한다.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가 있는 경기 파주시의 12일 최고 기온이 22.3도였다. 평균 최고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카타르의 ‘겨울 더위’도 월드컵 경기장 안에서는 열기를 잃고 마는 것이다.

대회 개막을 기다리는 팬들은 응원 열기로 뜨거웠다. 경기장에서 나와 찾아간 도하의 ‘코니시로드’(해변 도로)에는 카타르 국기 디자인을 딴 반팔 티셔츠를 입은 여성 팬들이 ‘젠다’라는 북과 ‘엘라살람’이라는 심벌즈 모양 약기를 두드리며 카타르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었다.

카타르 대표팀 단체 사진을 들고 나온 한 참가자는 “카타르가 (16강) 토너먼트에 올라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타르는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권을 따낸 이번 대회 이전에는 한 번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적이 없다.

카타르는 전체 거주 인구 279만 명 가운데 약 89%가 외국 국적자인 나라다. 그만큼 이번 월드컵에서 응원하는 나라도 다양하다. 모국이 이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이들은 다른 나라를 응원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출신인 아지즈 씨(28)는 이날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코니시로드를 찾았다. 그는 “2006년부터 아르헨티나를 응원했다. (아르헨티나 주장) 리오넬 메시(35·파리 생제르맹)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 같다. 아르헨티나가 우승할 때가 됐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는 국가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도하의 대표적 전통 시장인 ‘수끄와끼프’ 거리 일대를 행진하면서 응원전을 벌이기도 했다.

13일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있는 교통부 건물 정면 전체가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사진으로 뒤덮여 있다. 도하·라이얀=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3일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있는 교통부 건물 정면 전체가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사진으로 뒤덮여 있다. 도하·라이얀=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하늘을 향해 뻗은 마천루 외관도 월드컵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카타르 시내 주요 마천루에 각국 대표 선수의 경기 장면을 담은 사진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손흥민(30·토트넘)의 사진이 한국 대표팀 숙소가 있는 ‘도하 시티 센터’ 인근 한 건물을 장식했다.

이 건물 앞에서 만난 한 잉글랜드 팬은 “(안면 수술을 받은) 손흥민이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냐”고 물은 뒤 “손흥민이 이번 월드컵에서 한 건 하기를 기대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카타르 현지 매체 기자는 “손흥민은 2011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 경기에서 인도를 상대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 이 골을 시작으로 위대한 커리어를 쌓았기 때문에 손흥민은 카타르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선수”라고 전했다.

차량 가운데 있는 기둥형 손잡이를 대회 엠블럼 모양으로 만든 지하철을 타고 경기장과 시내 곳곳을 누비는 동안 대회 공식 주제가 ‘하야하야’가 끊임없이 들렸다. ‘하야’는 아랍어로 ‘어서 와’, ‘서둘러’라는 뜻이다. ‘우린 함께해야 더 빛난다’는 노랫말처럼 카타르 곳곳은 ‘어서 빨리 함께 월드컵의 열기로 빠져들자’고 손짓하고 있었다.

#카타르 월드컵#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경기장#거대한 에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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