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출신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축구 대표팀 감독(69)은 1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꺼냈다. 카타르 월드컵 기간 동안 이란 대표팀 선수들이 자국의 여성 억압에 대해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의미였다. 이는 최근 이란에서 발생한 ‘히잡 의문사’ 사건에 대한 케이로스 감독의 배려였다.
두 달 전인 9월 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쿠르드계 이란인 여성 마사 아미니(22)가 히잡(얼굴만 내놓고 머리 목 가슴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전통 복장)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아미니는 사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항의 시위가 확산됐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는 “미국의 선동으로 조직된 폭동”이라며 보안군을 투입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는 아직 이어지고 있다. 이란인권위원회는 하메네이 정부군의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어린이 43명과 여성 25명을 포함해 최소 32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고, 13일 이란 혁명재판소에서는 시위자에게 처음으로 사형 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이란 축구 대표팀으로도 확산됐다. 특히 사르다르 아즈문(27·레버쿠젠)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란의 여성과 민중을 죽이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히잡을 강요하는 것이 무슬림이면 나는 이단자가 될 것이다”라며 “이란 여성의 생명과 자유를 위해서라면 대표팀에서 빠져도 상관없다”고 밝혀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사기도 했다.
아즈문은 A매치 65경기에서 41골 7도움을 기록한 이란의 대표 공격수 중 하나다. 실제로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날인 13일 케이로스 감독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는 해프닝이 벌어지면서 아즈문의 대표팀 제외를 점치는 이란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케이로스 감독은 이튿날인 14일 아즈문을 대표팀 25인 명단에 포함시켰다.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들을 향해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주기로 결단한 케이로스 감독은 “월드컵 규정을 준수하고 스포츠 정신에 부합하는 선에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다른 나라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자국의 여성 억압에 대해) 항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란 대표팀 선수들은 카타르 월드컵 개막일인 21일 잉글랜드와 조별리그 B조 예선 첫 경기를 치르며 정치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커졌다. 케이로스 감독은 인종차별 반대의 의미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행해진 ‘무릎 꿇기’ 퍼포먼스 사례를 거론하며 “(당시) 선수들이 무릎을 꿇는 데 혹자는 이에 찬성했고 누군가는 반대했다”며 “이란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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