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 수준이라던 지난해 못지 않은 ‘쩐의 전쟁’ 광풍이 불고 있다. 프로야구 FA 시장이 올해도 과열, 대형 계약이 속출하는 모양새다.
23일 현재까지 FA 시장은 신청자 21명 중 6명이 계약을 마친 가운데, 누적 계약 총액은 421억3000만원이다. 지난해 기록된 역대 최고 기록인 989억원의 절반 수준에 해당하는 빠른 페이스다.
특히 지난 22일 이번 시장 최대어로 꼽히던 양의지가 두산과 4+2년 152억원의 역대 최대 규모 계약을 체결했고, 채은성도 한화 이글스와 6년 90억에 사인하는 등 대형 계약이 쏟아졌다.
지난해의 경우 나성범(KIA, 6년 150억원), 김재환(두산, 4년 115억원), 김현수(LG, 4+2년 115억원), 양현종(KIA, 4년 103억원), 박건우(6년 100억원) 등 무려 5건의 100억대 계약이 쏟아지면서 총액 989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물론 대어급 FA가 많았던 것도 있지만 2023시즌부터 도입되는 샐러리캡(총 연봉 상한제)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샐러리캡 시행 전 마지막 시즌인 지난해에 연봉을 몰아주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연봉 규모가 더 커진 측면이 있었다.
올해의 경우 당장 내년부터 샐러리캡이 시행되는만큼 작년과 같은 적극적인 투자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짐작이 빗나갔다. 이전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예상되던 수준의 계약을 크게 웃도는 ‘오버페이’에 가까운 계약이 쏟아지고 있다.
최대어인 양의지가 만 35세의 나이에 최대 6년 계약, 역대 최대 규모 계약을 따낸 것부터가 이런 현상을 나타낸다.
연평균 금액은 낮아졌다해도 4년 전 규모(4년 125억원)보다 더 큰 규모의 계약이 이뤄졌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양의지가 4년이 지난 후 ‘선수 옵션’을 실행해 2년 더 뛰면 만 41세까지 계약이 진행되는데, 해당 2년 동안 두산이 지급할 금액도 최대 42억원에 달한다.
LG 트윈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채은성(6년 90억원)의 경우도 비슷하다. LG의 4번타자로 오랫동안 활약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채은성의 시즌 최다 홈런은 25홈런(2018년)으로 30홈런을 넘긴 적도, 홈런왕 경쟁을 벌인 적도 없다. 당장 올 시즌도 12홈런에 그쳤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쓴다는 것을 감안해도 홈런이 많지 않은 거포다.
과열된 경쟁에서 비롯된 결과다. 특히 올 시즌 하위에 머무른 한화 이글스(10위), 두산 베어스(9위), 롯데 자이언츠(8위)가 나란히 칼을 빼들면서 FA 시장 참전에 나서면서 경쟁이 더 뜨거워진 측면이 크다.
한화의 경우 2010년대 들어 줄곧 하위권을 전전해왔고 올 시즌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작년 FA 시장에서도 최재훈을 잔류시킨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고 올 시즌 더 나빠진 성적표를 받아들자 영입을 선언했는데, 비수도권에 ‘약체’ 이미지가 강한 한화가 외부 영입을 하기 위해선 남들보다 더 많은 배팅이 필수적이었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의 영광을 뒤로 하고 9위로 쳐진 두산도 선수로 배경이 있다. ‘레전드’였던 이승엽 신임 감독을 선임하며 야심찬 오프시즌을 시작했는데, 이 감독이 공개적으로 ‘포수 보강’을 요청했다. 결국 신임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에서 양의지 영입에 힘을 줄 수 없었다.
롯데는 ‘안방마님’ 보강이 절실했다. 2017년 시즌 후 주전포수 강민호를 삼성 라이온즈에 내준 뒤 5년 째 포수 고민을 해결하지 못했다. 트레이드와 육성 등의 방안에 한계를 느끼면서 ‘포수 FA’가 쏟아져 나온 올해 칼을 빼들었고, 가장 어린 유강남을 잡는데 성공했다.
현재까지의 추이는 앞으로의 계약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당장 유강남을 놓친 LG 트윈스가 박동원을 영입했고, 양의지의 이탈로 포수 진용을 꾸리기 힘겨워진 NC 다이노스는 포수 FA 중 가장 저평가 받던 박세혁도 아쉬워진 형편이다.
포수에 이은 내야수들의 연쇄 이동 가능성도 남아있다. 박민우, 김상수, 노진혁, 오선진, 신본기 등이 시장에 나왔는데 내야 보강이 필요한 팀들이 많다.
NC는 애초 양의지와 박민우 두 명의 잔류를 목표로 했는데 양의지를 놓친 만큼 박민우만큼은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KT 위즈 역시 박경수의 노쇠화, 심우준의 군입대 등으로 ‘센터 내야수’가 텅 비었고, 롯데 역시 주전 유격수감이 필요하다. 하주석의 음주운전이라는 예상못한 악재가 생긴 한화도 내야수 보강이 절실하다.
포수와 마찬가지로, 경쟁이 붙으면 또 다시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C등급인 오선진과 신본기에게도 손을 뻗치는 구단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외에 한현희, 이재학, 정찬헌, 이태양 등 ‘준척급’이 많은 투수 FA의 계약도 남아있다. 지난해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몰라도, 올해 역시 그에 근접하는 수준의 누적액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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