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략으로 아르헨 잡은 사우디 감독, 한국 사령탑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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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11월 23일 1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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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베 르나르 사우디아라비아 감독과 코칭스태프 등이 22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에서 2대1 역전승을 거둔 뒤 환호하고 있다. 2022.11.23/뉴스1
에르베 르나르 사우디아라비아 감독과 코칭스태프 등이 22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에서 2대1 역전승을 거둔 뒤 환호하고 있다. 2022.11.23/뉴스1
사우디아라비아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킨 배경에는 에르베 르나르(54·프랑스)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이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완벽한 맞춤 전술로 월드컵사에 회자될 대이변을 완성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굵직한 업적을 남긴 르나르 감독에 대한 이목이 쏠리면서 과거 대한축구협회(KFA)가 그를 국가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점찍었던 사실도 화제가 되고 있다.

르나르 감독이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22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루사일의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2-1로 이겼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월드컵에서 퇴장할 리오넬 메시의 ‘라스트 댄스’로 관심을 모은 경기였는데 주인공은 메시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반 10분 만에 메시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했지만 잘 조직된 수비를 바탕으로 추가 실점을 막았고, 거센 반격을 펼쳐 후반 3분 살레 알셰흐리와 후반 8분 살렘 알도사리의 연속골이 터져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해외 매체는 ‘역대 월드컵 최대 이변’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적 같은 승리에 찬사를 보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왕령으로 승리한 23일을 임시 공휴일로 제정했다.

운 좋게 따낸 승리가 아니다. 철두철미하게 월드컵을 준비한 르나르 감독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최다우승팀 알힐랄 소속 선수 9명을 선발 출전시키며 잘 조직된 원팀의 힘을 보여줬다.

전반에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기계처럼 오르내리는 오프사이드 트랩으로 아르헨티나의 공격 흐름을 끊었다. 아르헨티나가 전반전에 기록한 오프사이드만 무려 7개였고, 그 가운데 나온 3골이 취소됐다.

르나르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함께 전술을 공격적으로 바꿔 상대의 허를 찔렀다. 전반전까지 1개의 슈팅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우디아라비아는 후반 3분부터 8분까지 5분 동안 슈팅 3개만으로 2골을 만들었다. 이 2골로 A매치 36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던 아르헨티나가 와르르 무너졌다.

완벽한 전략으로 아르헨티나를 제압한 르나르 감독은 2019년 7월부터 ‘변방’ 사우디아라비아의 지휘봉을 잡고 있지만 능력 만큼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명장이다.

르나르 감독은 현역 시절 두각을 보지 못한 평범한 선수로, 1998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 프랑스 무대에서 감독과 코치를 지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 르나르 감독에게 기회의 땅은 아프리카였다. 2007년 가나 대표팀 코치를 맡은 그는 2008년 잠비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됐고, 201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8강으로 이끌었다. 이후 2011년 다시 잠비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컵을 들어 올려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르나르 감독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직후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을 맡았고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또 우승했다. 다른 국가에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을 두 번 차지한 최초의 감독이라는 이정표도 세웠다.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던 르나르 감독은 모로코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돼 2018년 러시아 대회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모로코의 월드컵 진출은 1998 프랑스 대회 이후 20년 만이다. 다만 그는 첫 월드컵 도전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이란과 B조에 묶여 1무2패로 조별리그 탈락에 그쳤다. 따라서 이번 아르헨티나전 승리가 르나르 감독에겐 월드컵 첫 승리다.

러시아 월드컵을 마친 뒤 르나르 감독은 한국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이 러시아 대회를 끝으로 물러나면서 대한축구협회는 외국인 감독 선임에 나섰고, 르나르 감독과도 접촉했다.

그러나 르나르 감독은 모로코축구협회와 2022년 6월까지 장기계약을 맺은 상태여서 위약금 등 문제로 인해 한국 축구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파울루 벤투 감독과 계약을 체결했다.

르나르 감독과 모로코의 동행도 오래가지 않았다. 2019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16강 탈락한 뒤 르나르 감독이 사퇴한 것.

이에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을 앞둔 사우디아라바이가 재빠르게 르나르 감독을 선임했다. 르나르 감독이 아시아 대표팀을 맡은 것은 처음인데 그는 최종예선에서 일본, 호주 등을 따돌리고 B조 1위로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르나르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첫 경기부터 아르헨티나를 잡아내는 파란을 일으켰다. 같은 조의 멕시코와 폴란드가 0-0으로 비기면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조 1위에 올라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94 미국 대회 이후 28년 만에 16강 진출에 도전하는데 오는 26일 밤 10시 폴란드와 2차전에서 승리하면 조별리그 통과를 확정짓는다.

르나르 감독은 “축구에서는 어떤 일들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기뻐하면서도 “오늘 승리의 기쁨은 20분이면 충분하다. 아직 2경기가 더 남았다. 이제 다시 앞을 내다봐야 한다”고 16강을 향한 의지를 보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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