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LG 1차 지명 투수로 입단
타자전환 성공했지만 출전 줄어
퓨처스 FA 통해 4년간 20억 계약
“시즌 개인 최다 출장이 우선 목표”
외야수 이형종(34)은 프로야구 LG 입단 15년 만에 퓨처스리그(2군)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키움으로 둥지를 옮겼다. 4년간 총액 20억 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2군 FA 제도가 실효성 문제로 도입(2021년) 후 2년 만에 사라졌기 때문에 이형종은 50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고 팀을 옮긴 처음이자 마지막 2군 FA가 됐다. 지난해에는 팀을 옮긴 2군 FA가 아무도 없었다.
19일 키움 안방구장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이형종은 “죽다 살아난 계약이었다”며 “(키움 고형욱) 단장님께서 계약 후 ‘경기는 원 없이 나갈 수 있을 테니 몸만 잘 만들어달라’고 하시더라”라고 전했다.
서울고 시절 이형종은 ‘경기에 그만 좀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숨겨야 했던 투수였다. 팀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서울고 마운드에 오르는 게 늘 이형종이었기 때문이다. 이형종은 광주일고와 맞붙은 200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때도 3회말에 구원 등판해 공 140개를 던졌지만 9-10 역전패를 막지 못했다.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맞은 뒤 마운드 위에 무릎을 꿇고 우는 모습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히면서 이형종은 ‘눈물의 에이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형종은 이 대회가 끝난 2주 뒤 1차 지명자 자격으로 LG와 4억5000만 원에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이형종의 선수 생활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였다. 2010년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는 글을 남기고 팀을 떠났던 이형종은 팔꿈치 수술을 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13년 팀에 복귀했다. 그리고 등번호 107번 연습생 생활을 거쳐 투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이형종은 외야수로 1군 무대를 처음 밟은 2016년 등번호를 36번으로 바꿨다. 서울고 시절 등번호였다. 그해 타율 0.282(124타수 35안타)로 1군 무대에 연착륙한 그는 2018∼2021년에는 4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날리며 LG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LG 팬들은 넓디넓은 안방(서울 잠실구장) 외야를 휘젓고 다니는 그에게 ‘광(狂)토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팀 레전드 외야수 이병규(49·현 삼성 코치)가 ‘적토마’라고 불린 데서 유래한 별명이었다.
그러나 외야 자원이 풍족한 LG에서 광토마가 달릴 수 있는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기만 했다. 26경기 출전에 그친 지난해에는 경기 직전 퓨처스리그(2군)행 통보를 받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홀로 생일(6월 7일)을 보내기도 했다.
이형종은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30대 선수들 끝을 많이 봤다. 나도 2, 3년 뒤면 방출될 수순을 밟는 게 느껴져서 다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야구를 그만뒀을 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났기 때문에 버텼다. 이번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야구를 그만둬 본 기억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겪은 일이 다 ‘실화’니까 내가 정말 야구를 잘하면 누군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었다”면서 “이번 계약으로 동기부여가 되니까 몸도 더 빨리 준비되는 것 같다. 책임감도 느낀다”고 덧붙였다.
계약을 마친 뒤 곧바로 보강 운동을 시작했다는 이형종의 올 시즌 목표는 2017년 기록했던 자신의 최다 출장(128경기) 기록을 새로 쓰는 것이다. 이형종은 29일 미국 애리조나 캠프로 떠나 본격적인 새 시즌 준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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