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농구 시상식, 주인공은 김단비
6시즌 연속 팬투표 1위 오른 스타… 16년 만에 마침내 첫 MVP 감격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서 더 기뻐… 단련시켜준 위성우 감독께 감사”
“이 상을 받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데뷔 당시 나는 슛도 제대로 못 쏘고, 수비가 뭔지도 몰랐던 그냥 탄력만 조금 좋은 선수였다. 그런 나를 한 팀의 에이스로 만들어준 위성우 감독님께 감사하다.”
데뷔 16년 만에 처음으로 여자프로농구(WKBL)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김단비(33·우리은행)가 가장 먼저 꺼낸 이름은 수구 선수 출신 남편 유병진 씨(35)도, 부모님도 아닌 소속팀 감독이었다.
김단비는 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2022∼2023시즌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공개된 기자단 투표 결과 전체 110표 중 107표(97.3%)를 받아 MVP로 뽑혔다. 김단비는 2016∼2017시즌부터 2021∼2022시즌까지 6시즌 연속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차지한 선수였지만 유독 MVP와는 인연이 없었다. 김단비는 “학창 시절에도 인천 부일여중에 다니던 2004년에 MVP를 받아본 게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프로 데뷔 후에도 2009년 퓨처스리그(2군) MVP를 받았지만 1군에서는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통틀어 이번이 첫 MVP다.
김단비는 지난 시즌까지 15년 동안 신한은행에서만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러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우리은행으로 둥지를 옮겼다. 우리은행은 신인 시절이던 2007년부터 5년간 코치로 자신을 지도한 위성우 감독(52)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팀이었다.
위 감독은 선수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훈련을 많이 시키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내가 설마 너한테까지 그렇게 훈련을 시키겠냐”며 김단비를 설득한 위 감독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마자 ‘호랑이 감독’ 모드로 돌변했다. 김단비는 “오랫동안 신한은행에서 ‘절대적’ ‘상징적’ 존재란 얘기를 들으면서 안이했던 게 사실”이라며 “첫 슈팅 연습 때 감독님께서 ‘두 발을 11자로 나란히 놓으라고!’라며 고함을 치시는데 ‘내가 이러려고 팀을 옮긴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더라”고 말했다.
훈련 효과는 확실했다. 김단비는 평균 득점 2위(17.17점), 도움 2위(6.10개), 리바운드 5위(8.77개), 블록 1위(1.30개), 스틸 2위(1.53개) 등 공수에 걸쳐 고른 활약을 펼치며 우리은행(25승 5패)이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는 데 앞장섰다. 김단비는 이날 시상식에서 블록상, 우수수비선수상, 윤덕주상(최고공헌도상), 베스트5(포워드 부문)까지 수상하며 5관왕에 올랐다.
“솔직히 상대 팀이었을 때는 ‘김단비 막아’라고 외치는 감독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는 김단비는 위 감독이 이날 개인 통산 9번째로 감독상을 받으러 시상대에 오르자 “성우야, 나 지금 되게 신나!”라고 소리치며 고마움을 농담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김단비는 “선수 생활 초반에는 ‘이번에 못 받으면 다음에 받으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MVP는 내 것이 아니구나’ 하고 내려놓게 됐다”면서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뒤 다시 기회가 왔고 은퇴하기 전 내 이력에 MVP라는 글자가 들어가게 돼 너무 기쁘다”며 웃었다.
또 김단비는 “손흥민 선수 아버지 손웅정 씨가 ‘MVP는 곧 내려간다는 뜻’이라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은행으로 옮긴 이유도 내려가는 속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면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전성기에서 최대한 늦게 내려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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