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상황. 하지만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국은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WBC B조 조별리그 중국과의 최종 4차전에서 박건우(NC)와j 김하성(샌디에이고)의 만루홈런 등을 앞세워 22-5, 콜드게임승을 거뒀습니다. 전날 체코전 승리에 이어 중국전에서 완승을 거둔 한국은 2승 2패로 B조 3위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목표였던 4강은 물론 8강 진출에도 실패했지만 약체로 평가되던 중국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프로다웠습니다. 이강철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제가 부족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며 “야구팬들과 국민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상처 가득한 대회였지만 수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 스타인 ‘바람의 손자’ 이정후(25·키움)의 실력과 품격을 이번 WBC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타격 5관왕(타율, 안타, 타점, 장타율, 출루율)을 차지하며 프로 데뷔 6년 만에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그는 지난 겨울 내내 타격폼 수정에 매달렸습니다. 올 시즌 후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노리는 그는 평균 시속 150km대의 빠른 공을 던지는 MLB 투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타격 폼을 간결하게 바꾸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지요. 주변에서는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평생 해온 자세를 바꾸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프로야구 감독을 지낸 한 인사는 “결국 초반이 중요하다. 만약 결과가 제대로 나온다면 수정된 타격 폼을 밀고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원래 타격 폼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WBC 무대는 타격 폼을 바꾼 이정후가 처음으로 실전을 치르는 무대였습니다. 그것도 국내 투수들이 아닌 수준 높은 외국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정후는 이번 대회 내내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빛난 타자였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가장 중요한 경기로 꼽은 9일 호주전 안타를 비롯해 이정후는 이번 대회에서 14타수 6안타(타율 0.429), 5타점으로 맹활약했습니다.
특히 10일 숙적 일본과의 대결에서 그는 자신의 진가를 마음껏 뽐냈습니다. 150km대의 강속구와 빼어난 제구력, 그리고 공략하기 힘든 포크볼을 던지는 일본 투수들을 상대로 2개의 안타를 때려낸 것이지요. 이날 한국 타선이 9회 동안 친 안타는 고작 6개였습니다. 그 중 3분의1인 2안타가 이정후의 방망이에서 나왔습니다.
이정후는 중국과 마지막 경기를 마친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저를 비롯한 많은 어린 선수들이 참가했는데 많은 세계적인 선수들에 비해 기량이 떨어지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모자라는 부분을 잘 채워서 다음 2026 WBC에서는 더 좋을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루 전 이정후는 4-13으로 대패한 일본전에 대해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충격적이다. 내 야구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분한 마음도 있고 ‘이건 뭐지’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얻은 수확과 자신감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빠른 공과 변화구를 치기 위해 겨우내 준비했다. 좋은 공을 던진 일본 투수들의 공에 헛스윙 없이 대처해 낸 게 수확”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이정후는 이날 4번 타석에 들어가서 15개의 투구를 상대했는데 헛스윙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좋은 공을 쳐내고, 볼은 걸러냈습니다. 그리고 치기 어려운 공은 파울로 만들었습니다.
이날 이정후는 일본의 선발 투수로 나선 메이저리그 95승 투수 다루빗슈 유(샌디에이고)를 상대로 3회 2루 주자를 불러들이는 깨끗한 중전 안타를 치고 1루에서 포효했습니다. 5회에는 일본이 자랑하는 왼손 에이스 이마나가 쇼타(요코하마 DeNA)로부터는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를 기록했습니다.
“가장 인상에 남은 타석이 어떤 것이었느냐”는 질문에 이정후는 “다루빗슈를 상대로 친 안타도 기억에 남지만 (우익수 뜬공으로 아웃된) 첫 번째 타석에서 우측 방향으로 날린 파울 타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대투수 다루빗슈를 상대로 자신의 스윙을 완전히 가져가 방망이 중심에 정확히 맞혔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지요.
이렇듯 한 단계 더 진화한 이정후에게 메이저리그 입성은 멀지 않아 보입니다. 그의 활약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한 일본 기자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혹시 일본 무대에서 뛸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이정후는 “지금은 일단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잘하는 게 우선이다.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미국 무대에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제 바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회 내내 이정후는 뛰어난 실력과 함께 도전적인 정신,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 등을 말이 아닌 플레이로 보여줬습니다. ‘예비 메이저리거’인 이정후에게 꿈의 메이저리그는 이미 눈앞으로 다가온 듯 합니다. 도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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