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투지 넘친 체코…‘투잡러’ 선수들이 쓴 감동스토리

  • 뉴시스
  • 입력 2023년 3월 14일 11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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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단 1승만을 챙기고 퇴장했지만, 체코는 B조의 진정한 승자였다.

체코 야구 대표팀은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끝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B조 경기에서 1승 3패를 기록, 조 4위에 머물러 8강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팀이었다. ‘야구 변방국’ 체코는 처음 나선 WBC 본선에서 열정과 투지를 선보이며 전 세계 야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체코 대표팀은 선수들 대부분이 생업이 따로 있는 ‘투잡러’라 관심을 모았다.

직업도 다양하다. 한국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한 투수 루카시 에르콜리는 체코야구협회 홍보 담당자가 본업이다.

이 외에 내야수 마르틴 체르벤카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홍보 담당자, 지명타자 페트르 지마는 무역회사 어카운트 매니저, 외야수 아르노슈트 두보비는 고등학교 지리 교사, 투수 마레크 미나르지크는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한다. 내야수 필리프 스몰라는 회계사고, 에이스 마르틴 슈나이더는 소방관이다.

중국과의 경기에서 KBO리그에서 뛰는 주권(KT 위즈)을 상대로 역전 3점포를 작렬한 마르틴 무지크는 경기장 그라운드키퍼, 유소년 팀 코치다.

체코 대표팀을 이끈 파벨 하딤 감독도 본업이 신경과 전문의다.

이들은 그저 ‘야구가 좋아서’ 모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훈련하고, 경기를 하며 기량을 다듬었다.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체코 선수단은 유럽 지역 예선에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을 제치고 사상 첫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WBC 본선에 나선 체코 대표팀은 전 세계 야구 팬들의 이목이 쏠린 무대에서도 투지를 불태우며 감동을 선사했다. 전력이 월등한 우위인 팀을 상대로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체코는 지난 10일 중국과의 경기에서 8-5로 이기며 WBC 본선 첫 승리를 신고했다.

4-1로 앞서가다 7회말 대거 4점을 내주고 역전당했지만, 끈질긴 모습을 보이며 기어코 역전을 일궜다. 9회초 1사 2, 3루에서 체르벤카의 볼넷과 마테이 멘시크의 2루타로 1사 2, 3루의 찬스를 일궜고, 무지크가 KBO리그 KT 위즈에서 뛰는 주권을 상대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역전 3점포를 쏘아올렸다. 이후 2루타와 안타로 1점을 보태 승기를 낚아챘다.

객관적 전력상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일본을 상대로도 주눅들지 않았다. 체코 대표팀은 이번 대회 최고 스타로 꼽히는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를 상대하는 것에 “가슴이 벅차다”고 하면서도 “지는 걸 싫어한다”며 필승 의지를 불태웠다.

체코전에 선발 등판한 일본의 영건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 마린스)가 시속 160㎞가 넘는 강속구를 펑펑 뿜어낸 반면 체코 선발 온드르제이 사토리아는 평균 구속이 시속 128㎞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2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티면서 일본을 당황하게 했다. 사토리아는 오타니를 3구 삼진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체코는 결국 2-10으로 졌지만,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타니는 체코전을 마친 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체코 대표팀 사진과 함께 ‘Respect(존경)’라고 적었다. 오타니의 언급에 체코 대표팀은 밤잠을 설쳤을 정도로 기뻐했다.

체코는 한국을 상대로 3-7 패배를 당했지만, 7회 2점, 8회 1점을 내며 따라붙는 등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선발 투수 에르콜리는 1회에만 5점을 내주기는 했으나 2회 KBO리그 최고 타자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를 삼진으로 솎아내며 눈길을 끌었다.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체코 대표팀은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호주전에 선발 등판한 소방관 에이스 마르틴 슈나이더는 5⅓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알렉스 홀에게 솔로포를 얻어맞은 것이 유일한 피안타였다.

한 투수가 최대 65개의 공을 던질 수 있는 상황에서 5이닝 넘게 마운드를 지키며 역투를 펼쳤다.

슈나이더가 최대 투구수에 다다르자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간 하딤 감독은 슈나이더에게 90도 인사를 하며 예우했다. 이후 둘은 포옹을 나눴다.

슈나이더가 내려간 후 마운드가 흔들리면서 체코는 결국 3-8로 졌지만, 하딤 감독이 인사를 하는 장면은 야구 팬들의 뇌리에 남았다.

체코 응원단도 선수들만큼이나 눈에 띄었다. 1회부터 9회까지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선수단이 보여주는 투지에 일본 야구 팬들이 함께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한 후 하딤 감독은 “우리가 8강에 진출하기를 바랐지만,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팀이 자랑스럽다. 중국에 승리를 거뒀고, 나머지 팀들에 졌지만 좋은 경기를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체코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비결을 묻는 말에 하딤 감독은 “첫 번째 비결은 비밀이다”라고 농담한 후 “두 번째는 선수들 안에 있다. 나는 25년 동안 코치를 하면서 그들을 봐왔고,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뛰었다. 또 우리들에게는 지마와 체르벤카라는 훌륭한 리더가 있다”고 전했다.

하딤 감독은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면서 “(다음 WBC가 열리는)3년 뒤에 보자”고 인사했다.

[도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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