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라톤에 ‘아테네 메달’ 기증… 주한 그리스 대사 인터뷰
마라톤 기원지 그리스의 루파스 주한대사가 말하는 서울마라톤
마라톤 2500년 기념해 만든 메달… 한국대표 대회 빛내게 돼 큰 의미
서울마라톤, 양국 우애 다질 무대… 풍광 즐기며 달리는 코스 매력적
19일 열리는 2023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 국제 엘리트 부문 우승자와 2, 3위 선수들은 트로피에 더해 그리스 아테네에서 최근 공수된 특별한 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이 중 금메달은 마라톤 기원 2500주년을 기념해 그리스육상연맹이 2010년 특별 제작한 메달이다.
주한 그리스대사관은 6·25전쟁 정전 70주년인 올해 열리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 아테네마라톤 메달을 기증하는 등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서울마라톤과 아테네마라톤은 보스턴마라톤과 함께 2019년 세계육상연맹(WA)이 선정한 세계육상 문화유산에 올랐다.
에카테리니 루파스 주한 그리스대사는 15일 서울 중구 그리스대사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마라톤의 정신은 인내와 끈기, 요즘 말로 하면 꺾이지 않는 마음인데 한국의 역사는 그런 마라톤 정신을 잘 보여준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 그리스가 함께할 수 있어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리스에서 온 특별 메달은 어떤 메달인가.
“마라톤 역사가 시작된 지 25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메달이다. 메달 앞면에 한 병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했던 그리스 병사가 승전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라톤(지역명)에서 아테네까지 약 40㎞를 달려와 승리를 알린 뒤 쓰러져 숨을 거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것이 마라톤의 유래다. 메달에는 바로 그 병사의 모습을 형상화해 담았다. 2010년 제작돼 그리스육상연맹이 컬렉션용으로 간직해 왔다. 일제강점기이던 1931년 시작돼 90년 넘게 이어져온 한국의 대표적인 마라톤에 이 메달이 수여되는 것은 그리스에도 큰 의미가 있다.”
―마라톤은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서는 행위인 것 같다.
“마라톤에는 2500여 년 전 그리스 병사가 그랬듯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포기하지 않고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서울이나 아테네, 보스턴 등 유서 깊은 국제마라톤 대회를 통해 그런 메시지가 유유히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역사 자체가 마라톤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한강의 기적을 지나 지금의 최첨단 기술 강국이 되기까지 무수한 시련을 이겨내고 끈질긴 집념을 보여준 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제가 2021년 12월 한국에 부임했는데 한국을 알아갈수록 많이 놀라게 된다.
―한국과 그리스에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두 나라에는 공통점이 많다. 그리스도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고, 산이 많다. 그리스 역시 오스만튀르크(현 튀르키예)로부터 오랜 세월 식민지배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3년 넘는 내전의 아픔도 겪었다. 6·25전쟁 때 그리스에서 약 5000명의 군인이 한국을 위해 참전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다. 올해 한국은 정전 70주년, 그리스는 3월 25일이 202번째 독립기념일이다. 이번 서울마라톤은 양국의 우애를 다지는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다.”
―마라톤은 그런 점에서 축제이기도 한 것 같다.
“마라톤은 본질적으로 많은 것들을 포용한다. 풀코스, 하프코스, 10㎞ 중 각자 상황에 맞게 달리면 된다. 선수이든 아니든, 연령과 성별,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린다. 빨리 뛰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포용하는 게 바로 마라톤이다. 그것이 아테네 민주주의가 지향했던 목표이고, 한국이 여러 난관을 이겨내며 지켜온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마라톤은 두 민주주의 국가가 ‘가치의 연대’를 확인하는 장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걷기나 달리기를 즐기는 편인가.
“저는 한국의 가을을 사랑한다. 봄에 벚꽃도 좋지만 가을 단풍은 정말 아름답다. 서울에선 덕수궁이나 종묘, 남산을 자주 다니고 안동 하회마을의 한옥, 여수의 밤바다도 좋아한다. 외교관으로서 유럽의 수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서울은 빌딩숲 사이로 고풍스러운 공간을 잘 보존해놓은 것 같다. 도심을 걷다 보면 아담한 가게들도 많고 도시가 다양한 건축적 리듬을 갖도록 세심하게 설계됐다는 인상을 받는다. 서울마라톤의 코스는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어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달릴 수 있는 게 큰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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