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 국어사전에는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보충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국 하버드 의대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부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 따뜻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이분들은 참 겉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고위 공무원을 지낸 법률가와 축구 수집가가 둘도 없이 절친한 깐부 사이라고?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만 같은데 20년 전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 평생 같은 인생길을 걷는 사이가 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2008.3~2010.8)을 역임한 이석연 전 법제처장(69·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과 국내 유일 축구 수집 전문가인 이재형(62·베스트일레븐 이사)씨 얘기다.
● 사마천의 ‘사기(史記)’처럼 다가온 축구
이 전 처장은 검정고시로 법대에 진학해 행정고시, 사법고시를 패스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하다 변호사로 시민단체 활동을 했고, 제28대 법제처장에 이어 21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을 지냈다. 그는 헌법과 상식을 잣대로 진보-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고 ‘모두까기’ 한다고 해서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전 처장이 “그런 내 자신을 만든 8할”이라며 내세우는 건 독서다. ‘책이라는 법’이라는 독서 기술책까지 내고 지금도 여러 강연에서 알짜배기 책 읽는 기술을 전수한다.
“대학을 가기 전에 절에서 독학을 하면서 2년간 500권의 책을 읽고 지금의 지혜를 쌓았다”는 그는 이 씨를 만나고 생판 모르던 축구를 알게 됐다.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통해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이 전 처장은 축구를 보면서 스포츠맨십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우친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자세, 조언, 덕담의 영감도 축구에서 얻는다. 책, 여행에 이어 축구가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견인차가 됐다. 그래서 책은 밥, 축구는 반찬이다. 변호사 업무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 K리그나 아마추어 축구 경기를 보고, 축구인들과도 자주 만난다.
“손흥민(토트넘)을 제일 좋아하시죠?”
“나는 거의 무명이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해요. 약자라는 표현이 그렇지만 주목을 덜 받는 선수들에게 정이 가더라고요. 원래 강자에게 반항 의식이 있어서 그런가? 외면받았던 선수가 잘 되면 좋아요. 축구에서 감독 역할의 80%는 선수 기용에 있다고 봐요. 주목을 덜 받는 선수가 더 위축이 되면 안 되는데, 이것을 해결하는 게 감독 능력이죠.”
2월 20일 서울 성북구의 한식당에서 만난 이 전 처장에게 기습 질문을 던지니 예상 못 한 답이 돌아왔다. 옆에 있던 이 씨가 뿌듯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축구로도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이 전 처장은 축구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자 젓가락질을 멈췄다.
● 서로 고정관념의 뒤통수를 친 ‘당신’
이 전 처장과 이 씨가 처음 만난 건 2004년 ‘어느 날(두 사람 기억이 희미)’이다. 축구계에서는 수집가로서 이미 ‘축덕’으로 통했던 이 씨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이 전 처장과 마주쳤다.
둘이 만난 계기를 설명하자면 길다. 이 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이탈리아의 16강전에서 사용된 공을 확보하려고 이듬해 에콰도르로 날아갔다. 당시 월드컵에 나선 주심은 경기에 쓰인 공 중 하나를 골라 가져갈 수 있었다. 한국-이탈리아전 주심을 맡은 비론 모레노 심판은 에콰도르 출신. 그는 연장전에서 안정환이 넣은 극적인 골든골 공을 가져갔다.
이 씨는 국보 같은 공을 무조건 가져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현지로 갔다. 하지만 모레노 심판은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쓴 편지만 남겨두고 왔다. 당시 신창식 에콰도르 영사의 도움과 이 씨의 마음에 모레노 심판이 반응해 공을 한국에 기증했다. 신 전 영사는 주에콰도르 한국대사관 이름으로 모레노 심판에게 인증서까지 써줬다. 이 씨는 보답 차원에서 2004년 국내로 들어온 신 전 영사와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이날 약속 장소엔 이 전 처장도 같이 왔다. 신 전 영사가 고향 선후배 사이인 이 전 처장을 부른 것이었다.
이 씨는 뉴스에서 본 사람을 만나 놀랐고, 이 전 처장은 이 씨의 직업과 인생 스토리를 듣고 놀랐다. 이 전 처장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전 대한축구협회장)과 인연으로 2000년부터 대한축구협회 고문변호사를 맡았다. 이 씨를 보기 전에 축구와 접점이 있긴 했다. 그래도 선수가 아닌 일반인에게서 ‘축구로 죽고 축구로 살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그는 축구가 새롭게 보였다고 한다.
-이재형 씨 첫인상은 어땠나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가 저의 좌우명이에요. 소신의 일관성을 지킨다는 거죠. 이재형 이사가 딱 그런 사람이었어요. 한국 유일의 축구 수집가로 살겠다는 소신을 강하게 지키고 있었어요. 보자마자 내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씨는 명함 교환 정도만 하고 다음 만남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 돌아가는 어려운 얘기만 듣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내 축구 스토리를 계속 들으셨어요. 알고 보니 처장님도 ‘콜렉터’였어요. 책부터 도자기, 골동품을 수집한다며 저랑 통한다는 거예요. 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누나들, 남동생만 있거든요. 저에게도 형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형처럼 잘 모시면 나도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겠구나 생각을 했죠.”
이 씨는 이 전 처장과 이후 만남을 지속하면서 수집 열정을 더 신나게 불태웠다.
2006년에는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 8강전에서 기적의 4강을 이끈 홍명보(현 울산 감독)의 마지막 승부차기 공을 한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이집트로 날아갔다. 당시 주심은 이집트의 가말 알 간두르 심판이었다. 카이로에서 만난 알 간두르 심판은 이 씨의 간곡한 요청에 감동해 공을 기증했다. 이 씨의 노력 덕분에 한국 축구의 국보급 유산 2개가 한국 품으로 돌아왔다.
이후 이 씨는 이 전 처장의 제안을 계속 참고했다. 희귀한 북한 축구 자료를 새로 모았다. ‘축구 황제’ 펠레(브라질·2022년 사망)를 직접 만나보라는 이 전 처장의 팁에 그전에 모은 펠레 소장품 100여 점을 잘 관리하고 홍보했다. 그 덕에 이 씨는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업체의 주선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브라질-호주전 당시 경기장 스카이박스에서 펠레와 함께 저녁을 먹고 경기를 관전했다.
이 전 처장은 이 씨의 소개와 인도로 진짜 축구인이 됐다. 축구인 모임, 행사에 빠짐없이 나갔다. 그 인연으로 홍명보장학재단에서 비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이사가 됐다. 홍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이 전 처장이 쓴 책을 읽고 마음을 다스렸다. 이 전 처장은 창간 52년이 되는 국내 축구잡지 베스트일레븐의 고문도 맡고 있다.
‘독서광’인 그는 이 씨가 ‘22억 원짜리 축구공’, ‘축구 수집가의 보물 창고’ 등의 책을 펴내는 과정에서도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출판기념회에서는 무조건 이 씨 옆을 지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디 가자고 해도 거절한 적이 있는데 이 이사한테는 그런 적이 없어요. 나도 냉정하게 잘 끊는 사람인데 유독 이상하다니까. 하하.”
그는 동생 ‘깐부’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나를 계속 발견한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권위적이고 강직한 줄 알아요. 그런데 이 이사를 만나면 잔정이 많은 사람이 돼요. 축구와 연관이 되니 ‘이석연한테 저런 면도 있구나’라는 얘기가 들리더라고. 이런 관계가 참 좋단 말입니다.”
-두 분의 관계가 처장님 본인의 인생관, 신념을 더 확고하게 해줬을까요?
“노트나 일기장에 두 가지 말을 항상 써요. ‘늘 소신의 일관성을 버리지 말고, 고정관념의 뒤통수를 후려치자’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 상대로 특강할 때도 그렇고, 아들 셋한테도 ‘제발 튀는 행동을 해라’고 얘기해요. 비주류의 경쟁력을 뽐내는 축구수집가 이재형을 보면서 계속 느끼고 있어요.”(이석연)
● 축구로 더 튀고 싶은 ‘우리’
“축구에 계속 미치는 것도 괜찮겠죠. 처장님?”(이재형)
“얼마 전에 김진명 작가를 만났는데 최근 강연에서 언행일치 인생의 가치를 강조했다 하더라고. 이 이사는 축구를 위해 살겠다고 말하면서 일관된 노력을 하고 모든 것을 바쳤잖아. ‘내가 가는 길이 옳다’는 확신을 더 가져도 돼. 나 역시 시민운동은 헌법의 테두리에서 해야된다는 말을 했다가 욕도 많이 들었지. 그렇지만 소신을 지킨 것에는 후회 안 해.”(이석연)
“처장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책도 내시고 하는 게 저한테 굉장한 에너지로 다가와요. 힘을 받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고 아르헨티나 우승 주역인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 부모를 만나려고 아르헨티나까지 갔잖아요. 나이 신경 안 쓰고 앞으로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계속 도전해야겠어요.”(이재형)
“나도 주변에서 쉬라는데 오래 사는 것보다 사는 날까지 불꽃처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같이 튀어 봅시다.”(이석연)
점심식사가 식었는데 여전히 둘의 대화는 ‘핑퐁’이다.
그 와중에 이 전 처장은 “지금까지 수집 자료 중에 중요한 것 50개만 골라 수집 과정과 사연, 또 이 자료를 어디에 기증할 건지까지 섞어 책으로 만들어보자고. 그러면 책 보는 사람들이 놀랄 거야. 준비해봐”라고 아이디어를 또 제안한다. 천안의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안에 들어설 축구박물관에도 이 씨 자료들이 제대로 전시돼 가치를 인정받기를 바란다.
-처장님은 제대로 인생 ‘득템’ 하신 것 같네요.
“요즘 주변 사람들이 물어봐요. 같은 이 씨니까 처장님이 친형님이냐고요. 해외에 혹시라도 흩어져 있는, 우리가 몰랐던 한국 축구의 역사 유물 환수 작업을 계속할 겁니다. 이어 세계 최초로 축구 도서관을 짓고 싶어요. 5000여권 정도 축구 서적을 갖고 있는데 더 모아서 축구 팬들 모두가 자유롭게 열람했으면 좋겠어요. 처장님을 명예 도서관장으로 모실 겁니다. 책 읽는데 달인이시니 축구책 독서법 설명도 잘 해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하하”(이재형)
● ‘불가근불가원’ 지키며 오래 만날 ‘너와 나’
이 전 처장은 기자와 이 씨에게 “4월 성북동 길을 걸으며 또 한 번 축구 얘기를 하자”면서 이 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멀리 보고 만나자고. 지금처럼 서로 좋은 도움 주고, 존경하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같은 곳을 보면서 걸어가자고. 한 번 볼 때 너무 진을 빼면 다음을 기약할 수가 없어. 하하.”
“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제서야 수저와 젓가락을 드는 두 사람. 허리띠 풀고 제대로 밥 먹겠다 싶었는데 이 전 처장이 반찬을 집다가 또 축구로 빠진다.
“그나저나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는 누가 온대? 선수 기용 잘하고 분위기를 잘 이끄는 감독이면 좋을 텐데.”
두 사람이 만나고 이틀 후 외신과 국내 언론은 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와 협상 중이라는 소식을 다뤘고, 실제로 클린스만 감독이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3월 A매치 2경기를 치렀다.
어릴 적 축구 선수가 꿈이었고, 지금도 주말마다 5곳의 축구 클럽을 돌며 공을 차는 이 씨가 반격의 제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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