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하나원큐와 계약한 이유
약체팀에서 고군분투하며 신인상… 부상당한 후 쫓겨나다시피 우리行
“어린 친정 후배들 성장 돕고 싶다”… 우승 경험 품고 하나원큐 품으로
약체 팀에서 데뷔해 그 시즌 신인상을 차지한 농구 선수가 있었다. 이후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고군분투했지만 팀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자유계약선수(FA)로 팀을 옮긴 뒤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두 차례 들어올렸다. 그래도 친정팀을 잊지 못했던 이 선수는 데뷔팀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미국프로농구(NBA) 간판스타 르브론 제임스(39)의 이야기가 아니다. 6시즌 동안 몸담았던 우리은행을 떠나 친정팀 하나원큐와 FA 계약을 맺은 김정은(36)의 이야기다. 제임스는 TV 생방송을 통해 자신이 데뷔팀 클리블랜드를 떠나 마이애미로 향한다고 발표했지만 김정은은 2017년 KEB하나은행(현 하나원큐)에서 쫓겨나듯 우리은행에 합류해야 했다.
최근 서울 강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정은은 “하나원큐는 내 청춘을 다 바친 곳이다. 팀을 위해 정말 열심히 뛰었다. ‘내가 이 팀을 꼭 정상에 올려놓겠다’는 사명감이 정말 컸다. 그때 내 별명이 ‘소녀 가장’ 아니었냐”며 “그런데 부상을 당해 부진했고 구단이 세대교체를 원해 팀을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2016년 무릎 수술을 받은 김정은은 2016∼2017시즌 경기당 평균 출전시간(18분 27초)과 평균 득점(5.13점) 모두 ‘커리어 로’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리빌딩을 선언한 하나원큐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전 두 차례 FA 때는 김정은에게 늘 최고 대우를 제시했던 하나원큐였다.
그때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이 ‘명예회복을 돕겠다’고 나서면서 김정은은 우리은행 선수가 됐다. 김정은은 2017∼2018시즌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하며 재기를 알렸고 2022∼2023시즌에는 두 번째 챔프전 우승까지 경험했다.
김정은은 “사실 지난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려고 했다. 그래서 챔프전 3차전 때는 그동안 경기장에 못 오게 했던 남편도 처음 초대했다. 우리은행으로 이적하고 초반에 남편이 경기장에 올 때마다 지길래 절대 못 오게 했었다”면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뛰니까 없던 힘도 생기더라. 덕분에 남편과 우승 기념 사진도 남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럭비 선수였던 정대익 씨(39)와 2016년 결혼한 김정은은 챔프전 3차전에서 3점슛 5개를 포함해 18점을 넣었다. 이 경기 양 팀 최다 득점이자 본인의 챔프전 한 경기 최다 득점 타이 기록이기도 했다. 김정은은 이날 리바운드도 11개를 잡아냈다.
이날 승리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우리은행 역시 개인 다섯 번째 FA 자격을 얻은 김정은과 연장 계약을 맺으려 했다. 또 하나원큐뿐만 아니라 신한은행에서도 영입 제안이 왔다. 김정은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큰 결정이었다”면서 “우리은행은 내가 없다고 쉽게 질 팀이 아니다. 또 내가 남으면 후배 선수들의 연봉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팀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한은행에서도 정말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셨지만 친정팀에서 후배들의 성장을 도우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게 가장 가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리빌딩은 어린 선수들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린 선수들이 (상대팀) 언니들의 기에 눌리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계속해 “우리은행 이적 초기에는 하나원큐가 미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선수들이 빠져나가며 팀이 무너지는 걸 보니까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면서 마음이 참 안 좋았다. 그래서 친정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원큐는 6승 24패로 지난 시즌 최하위(6위)에 그쳤다.
김정은은 “이번 계약은 내 농구 인생에서 덤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코트 위에서는 예전 같지 못하다”면서 “그 대신 몸 관리 법이나 프로 선수의 마음가짐 같은 부분을 후배들에게 진정성 있게 알려주려 한다. 그래서 하나원큐를 선수들이 오고 싶어 하는 팀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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