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레슬링 50kg급 천미란의 도전
무딘 거리감각 맹훈련으로 극복
4월 亞선수권 女선수 유일 메달
“전진하다 보면 창대한 순간 올 것”
한국 여자 레슬링 대표 천미란(24·삼성생명)이 두꺼운 안경을 쓴 채 방실방실 웃으며 충북 진천선수촌 레슬링 훈련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안경을 벗고 매트 위에 올라서자 순식간에 표정이 달라졌다. 일본 만화 ‘닥터 슬럼프’ 주인공을 닮은 해맑은 얼굴은 사라지고 ‘작은 거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키 152cm인 천미란은 지난달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여자 50kg급 1위를 차지하면서 9월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아경기 출전권을 따냈다. 천미란이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1일 다시 두꺼운 안경을 쓰고 나타난 천미란은 “너무 들뜨거나 주눅 들지 않고 항상 해오던 대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천미란은 근시와 난시가 동시에 있어 안경이 없으면 세상이 뿌옇게 보인다. 레슬링 선수가 앞을 잘 보지 못하면 거리 감각이 무뎌져 공격 기술 구사에 어려움을 겪는다. 천미란은 “콘택트렌즈를 껴 봤는데 효과가 별로 없었다. 병원에서도 ‘시력교정술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란 대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반복 훈련뿐이었다. 천미란은 “연습 경기 때는 상대에게 점수를 주더라도 가능한 한 공격을 많이 시도해보는 편”이라며 “이제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며 웃었다. 이렇게 갈고닦은 ‘정면 태클’이 천미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천미란은 “상대 두 다리를 잡아 넘어뜨려야 하는 만큼 시도하기는 어렵지만 성공만 하면 더욱 효과적인 공격이 된다”고 설명했다.
천미란은 원래 태권도 선수였다. 중학교 1학년 때 3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150cm가 되지 않는 키가 발목을 잡았다. 천미란은 “아무리 발을 뻗어도 상대의 어깨를 넘지 못했다. 병원과 한의원을 가리지 않고 다녔지만 ‘성장판이 일찍 닫혔다’는 이야기만 들었다”면서 “그래도 운동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오빠가 레슬링을 하고 있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레슬링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태권도에서는 약점이었던 키가 레슬링에서는 장점이 됐다. 키가 작다는 건 무게중심도 낮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태권도에서 익힌 빠른 발놀림도 레슬링에선 좋은 무기가 됐다. 천미란은 레슬링을 시작한 후 처음 나간 전국대회에서 3등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충북체고 2, 3학년 때는 출전한 9개 전국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고 3학년 때는 성인 대표팀에도 뽑혔다.
그러나 세계 무대는 달랐다. 천미란은 국가대표 데뷔 무대였던 2017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첫 판부터 패했다. 천미란은 “국내 대회에선 나갈 때마다 우승해서 자신감이 있었는데 첫 경기에서 바로 져서 충격을 받았다. ‘국가대표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때는 아예 대표팀에 뽑히지도 못했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천미란은 올해 4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 선수로는 유일하게 시상대에 올랐다. “이 대회를 통해 내 기술이 통했다는 성취감을 얻었다”는 천미란은 항저우 아시아경기에서도 유력 메달 후보다. 천미란은 “물론 목표는 메달 획득이지만 무엇보다 매번 더 나은 경기를 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란 성경 구절처럼 창대한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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