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킹’ 이승엽 감독(47)이 이끄는 두산은 25일 프로야구 잠실 안방경기에서 롯데를 8-5로 꺾고 11연승을 질주했다. 두산은 그러면서 김인식 감독 시절이던 2000년, 김태형 감독 시절이던 2018년 기록한 10연승을 뛰어넘어 구단 최다 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10연승 당시 김인식 감독은 부임 6년 차, 김태형 감독은 4년 차에 이미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까지 있던 베테랑이었다. 반면 이승엽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두산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지도자 경험이 전무했고 두산은 지난 시즌 10개 팀 중 9위에 그친 상태였다.
이 감독은 이날 경기 후 ‘명장 두 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소감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제가 감히 어떻게”라고 손사래를 친 뒤 “팀을 맡은 지 1년도 안 됐고 지금도 많이 부족하다. 이제 조금씩 선수들을 알아가면서 안정되고 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온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김태형 전 감독이 이 경기 중계를 맡았다. 이승엽 감독은 “처음 팀에 와서 선수 파악이 안 돼 있을 때 선수들에 대해 (김태형 전 감독님께) 많이 여쭤봤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믿음으로 이끈 약속의 7월
선수 시절 삼성에서 ‘약속의 8회’를 이끌던 이승엽은 두산 감독 부임 첫 해 ‘약속의 7월’을 이끌고 있다. 7월 들어 두산은 단 1패도 당하지 않으면서 11연승을 질주했다. 그러면서 6월 말까지 6위(33승36패·승률 0.478)였던 팀 순위도 3위까지 올랐다.
이날 1위 LG는 수원에서 KT에 1-4로, 2위 SSG는 대구에서 삼성에 1-5로 패하면서 3위 두산은 LG는 4.5경기, SSG는 3경기 차이로 쫓아가게 됐다. 전반기 내내 견고했던 LG, SSG의 ‘2강 체제’를 두산이 뒤흔든 것이다.
두산은 시즌 개막 전부터 ‘약체’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이승엽 감독은 그런 평가가 들릴 때마다 “우리 선수들을 믿어달라”고 외쳤다. 그 믿음이 결실을 이룬 대표 사례가 외국인 타자 로하스(30)다.
로하스는 6월까지 안타(36개)보다 삼진(37개)이 더 많은 선수였다. 타율도 0.204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승엽 감독은 전력에 마이너스가 되는 외국인 타자 얘기가 나올 때마다 “살려내겠다”라고만 했다.
이승엽 감독은 로하스를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퓨처스리그(2군)에 보내면서 “너의 능력은 항상 믿는다. 오히려 기회를 계속 못 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면서 ‘외국인 4번 타자’의 짐을 져 본 이승엽 감독은 부진한 외국인 타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로하스는 7월 들어 타율 0.333(33타수 11안타), 1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이승엽 감독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로하스는 “감독님은 항상 믿음을 주시고 절대 저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으셨다”며 “팀과 나 모두 7월 들어 크게 반등했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지금은 다들 잘해서 에너지가 서로에게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는 시즌 다 끝나고 해주십시오”
프로야구 통산 홈런 1위(467개) 기록 보유자로 ‘국민 타자’로 불렸던 이승엽 감독이지만 지도자 데뷔 시즌이 성공적일 거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올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상대 9개 팀 감독 누구도 두산을 ‘가을야구에서 만날 것 같은 팀’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승엽 감독은 “주변에서 (5강 후보로) 안 뽑아주셨으니까 더 편하지 않았을까요?”라며 “그래서 ‘더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 평가가 잘못됐다는 걸 보여줘도 되지 않겠나’하는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중간평가”라고 강조했다. 이승엽 감독은 ““아직 63경기가 남았다. 남은 경기에서는 좀 더 많은 승리를 원한다. 선수들도 여기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평가는 시즌 다 끝나고 해달라. 다 끝나고 ‘정말 고생했구나’ 얘기 듣고 싶다”고 말했다.
11연승은 역대 프로야구 감독의 데뷔 시즌 최다 연승 타이기록이다. 이전에 같은 기록을 남긴 건 2008년 롯데 지휘봉을 잡은 로이스터 감독뿐이다. 두산이 26일 경기에서도 롯데를 물리치면 이승엽 감독은 ‘한국인 감독 가운데’라는 꼬리표를 떼고 리그 전체에서 데뷔 첫 해 가장 긴 연승을 기록한 감독이 된다.
○68분이 걸린 8회초
고척에서는 한화가 안방 팀 키움을 16-6으로 물리쳤다. 한화는 3-6으로 끌려가던 8회초에만 13점을 뽑으면서 경기를 뒤집었다. 8회초에만 타자 18명이 타석에 들어서 68분 동안 공격을 이어가면서 이진영(26)의 3점 홈런을 포함해 10안타 5볼넷 13타점을 기록했다.
한 이닝 13득점은 역대 공동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LG가 1992년 당시 한 이닝 최다 기록이던 13득점 기록을 남겼고 이어 1999년 현대, 2001년 LG, 2003년 삼성도 같은 기록에 성공했다. 한 이닝 최다 득점은 한화가 2019년 4월 7일 사직 롯데전 3회초에 기록한 16점이다.
이날 한화 3번 타자로 출전한 노시환(23)은 4회초에 키움 선발 장재영(21)이 던진 시속 150km짜리 빠른 공을 받아 쳐 시즌 20호 홈런을 터뜨렸다. 노시환은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20홈런 기록을 남기면서 홈런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왔다.
장재영은 프로 데뷔 이후 한 경기 최다 투구수(99개)와 최다 탈삼진(9개) 기록을 세웠지만 구원진 도움을 받지 못해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다. 신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김동헌(19)은 6회말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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