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아시안게임서 메달 도전
세계 정상급 선수에 기술 안밀려
음악 조화에 연기력 보완 땐 가능
“올림픽서 역사상 첫 메달 따야죠”
“손연재(29)가 왜 다시 왔지? 은퇴한 거 아니었어?”
3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23 리듬체조 그랑프리에 참가한 한국 대표 손지인(17·서울세종고)을 보고 유럽 팀 관계자들이 이렇게 수군댔다. 두 선수가 성(姓)이 같을 뿐 아니라 얼굴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손연재가 서울에서 운영 중인 리듬체조교실 ‘리프스튜디오’에서 최근 만난 손지인은 “현지 TV 중계진도 ‘손연재가 아니라 손지인’이라고 강조하더라”면서 “내가 봐도 연재 언니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는 하다”며 웃었다.
손지인은 서울 봉은중 2학년이던 2020년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대한체조협회장배 전국대회에서 4개 종목(곤봉, 리본, 볼, 후프) 1위에 올랐고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며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권까지 따냈다.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메달을 딴 한국 리듬체조 선수는 손연재뿐이다. 손연재는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2014년 인천 대회 때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연재는 “지인이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비교해도 기술적으로 뒤지지 않는다.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는 배짱도 갖췄다. 다만 배경음악과의 조화, 연기력 등은 좀 더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점을 잘 살려 지금보다 자신 있게 연기하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손지인은 ‘그 이상’을 꿈꾼다. 손지인은 “내 꿈은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이라며 “한국 리듬체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재 언니를 존경해 왔는데, 그 이름에 견줘 보려면 나도 최초의 기록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한국 리듬체조의 올림픽 최고 성적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 손연재의 4위다.
손지인은 원래 리듬체조 선수가 아니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여섯 살 때 생긴 첫 꿈이었다. 그러나 발레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동생이 태어나자 운명이 바뀌었다. 어머니가 등원 길에 동행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발레 학원보다 집에서 가까웠던 리듬체조 학원으로 옮긴 것이다.
손지인은 “막상 해보니 리듬체조가 발레보다 더 재미있었다. 바닥도 구르고 다양한 수구(手具)를 사용하는 게 훨씬 역동적이라 매력적이었다”면서 “외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한 손으로 저글링을 하실 정도로 운동 신경이 좋다. 나도 곤봉이나 볼을 던졌다가 안정적으로 잡아내는 걸 보면 재능을 물려받은 덕에 리듬체조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손지인은 원래 왼손잡이지만 리듬체조는 오른손으로 배웠다. 학원에서 손지인이 오른손잡이라고 생각해 오른손으로 수구 사용법을 알려줬는데 부끄럼을 타는 바람에 이를 바로잡지 못했던 것. 손지인은 “그 덕에 양손을 번갈아 사용해야 하는 리본 종목에서 유리하게 됐으니 오히려 잘됐다 싶다”며 웃었다.
발레 경험도 도움이 됐다. 손지인의 주특기는 발레 팡셰 동작을 응용한 팡셰턴(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뒤 연속 회전하는 동작)이다. 손지인은 “지금까지 실전 최고 회전 기록은 7바퀴다. 그런데 최근 훈련에서 8바퀴를 도는 데 두 번 성공했다. 팡셰턴 8바퀴를 성공한 선수는 세계적으로도 정말 드물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8바퀴에 성공하면 시상대에 설 확률이 그만큼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 “어머니도 기계체조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외할머니가 ‘여자가 무슨 운동이냐’고 반대하셔서 포기하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꼭 따서 부모님께 걸어드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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