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충남 공주시에서 열린 2023 공주백제마라톤에 참가한 시각장애인 지상진 씨(32)는 고교 동창 방현태 씨(32)와 끈으로 서로의 손목을 연결한 채 10km를 완주했다.
지 씨가 바깥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달린 건 약 약 4년 만이다. 지 씨는 “시력이 나빠진 지 얼마 안 돼 바깥에서 뛰는 경험을 하기 쉽지 않았는데 친구가 같이 뛰어준 덕분에 완주했다. 되게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제한시간(1시간 30분) 안에 들어와 다행”이라고 했다.
2019년 황반 변성으로 시력을 잃게 된 지 씨는 시각장애가 생긴 뒤 1년은 집에만 머물렀다. 안압이 높았던 지 씨는 직장을 쉬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시력이 돌아올 줄 알았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과 시력이 나빠진 시기가 겹친 영향도 컸다.
지 씨는 “장애는 극복이 아니라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집에 1년 정도 있다가 복지관에 나가 점자를 비롯해 자립에 필요한 것들을 속성으로 배웠다. 장애가 생기고 나니 내가 정말 인복이 많다고 느꼈다”며 “그래서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대회에도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장애가 없던 때에는 마라톤 대회는커녕 달리기도 하지 않았던 지 씨는 “그동안 런닝머신, 로잉머신, 사이클 등을 집에 들여놓았다. 그래도 집 안에서 운동하다 보니 바깥 공기를 맡으면서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살고 있는 공주에서 대회가 열려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둘은 시각장애인협회에서 대여해준 ‘가이드러너’용 줄을 서로의 손목에 감고 뛰었다. 손목에 고정하는 게 아니라 샅바처럼 자유롭게 감았다 풀 수 있어 상황에 따라 적절히 끈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마라톤도, 가이드 러너도 처음이었던 친구 방 씨는 첫 ‘가이드 러너’를 마친 소감을 묻자 “제가 가이드를 했다기보다는 친구가 저보다 잘 뛰어서 오히려 제 페이스에 맞춰줬다. 레이스 초반에는 ‘다신 못 뛰겠다’ 싶었는데 달리다 보니 ‘내년에도 하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를 들은 지 씨는 “친구야, 내년에도 같이 뛰자”며 활짝 웃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