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컴파운드 혼성전에서 준우승한 주재훈(31·한국수력원자력)이 목에 걸린 은메달을 손에 쥐고 활짝 웃었다.
주재훈은 항저우 대회에 출전한 16명의 태극 궁사 중 유일하게 동호인 출신 대표선수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그는 대학생 시절 활의 매력에 빠져 취미로 양궁을 즐겼다. “열정과 노력을 기울이면 적성을 찾을 수 있다. 나는 활을 잡는 순간, 양궁이 내 길이라고 느꼈다”는 것이 주재훈이 밝힌 양궁 입문 배경이다.
동호인 대회에서 월등한 기량을 발휘한 주재훈은 조금씩 태극마크를 꿈꿨고, 다섯 차례 도전 끝에 기어이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리고 지난 4월 확정된 아시안게임 양궁 컴파운드 남자 대표 선발전에서 ‘4위’로 자랑스럽게 태극마크를 손에 넣었다.
소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 어렵다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초등학교부터 전문적으로 양궁을 배워온 전문 선수들을 제치고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것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기 어렵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청원경찰로 재직 중인 주재훈은 매일 퇴근 후 2~3시간씩 활을 쏘며 단련했고, 아시안게임에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 1일 컴파운드 남자부 예선라운드에서는 712점으로 전체 1위를 차지하며 개인전과 단체전, 혼성전 자격을 획득했다.
한국 양궁대표팀은 리커브 및 컴파운드 예선에서 팀내 1, 2위에게만 개인전 출전권을 부여한다. 또한 상위 3명만 단체전에 나설 수 있으며 남녀 1위는 혼성전에 팀을 이뤄 출전이 가능하다.
주재훈은 3일 컴파운드 남자 개인전 준결승에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지만 4일 열린 혼성전에서는 소채원(26·현대모비스)과 짝을 이뤄 은메달을 합작했다. 결승전에서는 인도의 조티 수레카 벤남-오야스 프라빈 데오탈레와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을 펼친 끝에 158-159로 석패했다.
시상식을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선 주재훈은 “은메달도 내게는 값지고 귀하다”며 “쉽지 않은 결승전이었는데 크게 떨지 않고 경기를 잘 마쳤다. 이 결과에 만족한다. 남은 컴파운드 남자 단체전에 집중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 취재진이 “진급과 은메달 중 뭐가 좋은가”라고 묻자 주재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은메달”이라고 답했다.
그는 “솔직히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못했다. 앞서 국제 대회에 나가면 매번 (우리나라 대표 4명 중) 4위를 했다. 3위를 해야 단체전이라도 뛸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그런데 아시안게임에서는 천운이 따르면서 예선을 1위로 통과해 개인전, 단체전, 혼성전을 모두 뛸 기회를 얻었다. 다시 못 올 기회로 여겨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국제대회 첫 메달을 아시안게임 메달로 땄다. 이 은메달은 가보로 남길 것”이라며 “이 메달을 따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다. 경북 울진 지역 사회, 가족들, 회사 관계자분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가 됐지만 주재훈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온전히 대회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직장에서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천선수촌에 입촌해야 할 때는 회사의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결국 주재훈은 3월 회사에 1년 휴직을 신청했고, 회사도 이를 수용하는 등 편의를 봐줬다. 그는 “회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 쉽지 않았을 텐데 휴직 신청을 받아주셨다. 그 덕분에 국가대표 자격을 유지하고 이렇게 국제 대회에 나와 메달을 땄다. 회사 관계자 분들게 감사드린다. 아직 몇 경기가 남았는데 값진 결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동호인 출신 선수가 태극마크를 단 것도 놀라운데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가 됐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전문 선수 못지않은 기량을 펼칠 수 있던 데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양궁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재훈은 “나는 전문 선수들보다 슛 타이밍이 빠르다. 일반적으로 전문 선수들이 6발을 쏘는데 15분 정도 걸리는데 나는 5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하루 2~3시간씩 활을 쏘면 훈련할 시간이 모자라지 않았다”며 “해외 양궁 선수들의 동영상을 찾아 멘털 관리 방법을 배웠다. 또 각종 협회 및 동호인 대회를 뛰면서 경험을 축적해왔다”고 설명했다.
전문 선수의 길을 걷지 않은 것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주재훈은 “전문 선수들의 스케줄은 마치 군대 같다. 나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이라 전문 선수들이 받는 억제된 훈련을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문 선수로 시작했다면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주재훈은 자신의 빈자리에도 혼자 두 아들과 가정을 돌본 아내에게도 감사인사를 했다. 그는 “아내가 뒷바라지를 해준 덕분에 못난 남편이 이렇게 국제 대회를 뛸 수 있었다. 정말 천생연분을 만났다. 집에 돌아가면 아내한테 잘해줘야 할 것다”며 “그런데 아내는 메달보다 상금을 좋아할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가장으로 돈도 벌어야 하는 만큼 또 국제 대회를 뛰기가 여의치 않다. 스스로도 이번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한 번 더 뛰고 싶은 무대가 있는데 바로 올림픽이다.
주재훈은 “2028 LA 올림픽에 양궁 컴파운드 종목이 추가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에서 해고될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그렇게 된다면 다시 한번 국가대표에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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