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갈고 나왔다. 5일 전 대만과 조별리그서 패전투수의 멍에를 안았던 문동주(20·한화)가 결승서 재회한 대만 타선을 상대로 시속 160km(전광판 기준)를 넘나드는 속구를 뿌리며 한국 야구 아시안게임 4회 연속 우승에 핵심 역할을 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7일 중국 저장성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대만에 2-0으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은 4회 연속 금메달이다.
한국 야구는 지금까지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대회를 포함해 아시안게임에서 총 6개의 금메달을 수집했다. 한국 야구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지 못한 건 야구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됐던 1994년 히로시마 대회(은메달)와 2006년 도하 대회(동메달) 두 번뿐이다.
문동주는 대만에 0-4로 패했던 2일 대회 조별리그 B조 2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나와 4이닝 3피안타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하지만 결승에서 재회한 대만 타선을 상대로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문동주는 이날 6이닝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대만 타선을 봉쇄했다. 경기 후 우시시엔 대만 감독 역시 “상대 선발 투수인 문동주가 저번 경기 때보다 훨씬 잘 던졌다”고 평했다.
문동주는 0-0으로 맞선 1회말 대만의 리드오프 정쭝저에게 2루타를 얻어맞았다. 2번 타자 린쯔웨이의 희생 번트로 1사 3루 위기에 몰린 문동주는 시속 161km에 달하는 몸쪽 속구와 변화구를 섞어 던지며 실점 없이 아웃카운트 2개를 채워 넣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문동주는 고함을 지르며 기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문동주는 2, 4, 5회를 삼자범퇴로 솎아냈다. 3, 6회에도 안타 1개씩만을 내주고 실점 없이 건너갔다.
문동주는 “원래 (소리를 지르는)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나도 그렇게 포효할 거라 생각 못 했다. (대만과의) 첫 경기 때 부족했는데 그래서 (이번 경기 승리가) 더 간절했던 것 같다”며 “아버지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코치로 다녀오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꿈을 오늘 이룰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문동주의 아버지는 해머던지기 국가대표 출신인 문준흠 장흥군청 감독이다. 2010년 광저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국가대표 지도자로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기도 했다.
“(오늘 경기 승리에) 한몫한 것 같다”고 말한 문동주는 “한몫보다는 더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몫보다 훨씬 많이 한 것 같다”며 웃었다.
한국 타선은 조별리그 맞대결 때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대만 선발 투수 린위민을 상대로 이날 2점을 뽑아냈다. 2회초에 선두타자로 나온 문보경이 린위민의 초구를 공략해 우익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2루타를 때려냈고, 이어지는 강백호의 타석 때 폭투를 틈타 3루까지 진루했다. 1사 3루 기회에 7번 타자 김주원이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치면서 1점을 올렸다. 이후 김형준과 김성윤의 연속 안타로 맞이한 2사 2, 3루에서도 폭투가 나오면서 3루 주자 김형준이 홈을 밟았다.
대만 입장에서는 아쉬울 법한 장면도 나왔다. 톱타자 정쭝저가 6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타석에 들어서 담장 위쪽을 때리는 큼지막한 2루타를 때려낸 것. 대만 벤치에서는 ‘홈런이 아니냐’고 어필했지만 판정이 바뀌지는 않았다. 정쭝저는 이날 문동주를 상대로 3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문동주가 내려간 뒤에도 한국 구원 투수들의 호투가 이어졌다. 7회에 최지민(KIA), 8회에 박영현(KT)이 무실점을 기록했다. 9회말 마운드에 오른 마무리 투수 고우석(LG)이 1사 후 안타 2개를 연달아 내주며 1사 1, 2루 위기에 몰렸지만 대만의 5번 타자 우녠팅에게 병살을 유도해내며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만 야구팬들의 관심을 끈 대결도 있었다. 한국이 2-0으로 앞선 6회초 대만의 선발 투수 린위민이 마운드를 내려가고 류즈룽이 공을 이어받았는데 1사 2루 상황에 한국의 강백호(KT)가 타석에 들어서면서 ‘친구 매치업’이 성사된 것이다.
류즈룽과 강백호는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국제경기를 함께 뛰며 우정을 쌓아온 동갑내기 친구로 대만에서 유명하다. 강백호는 이 타석에서 좌전 안타를 때려냈지만 다음번 타석인 9회초에는 유격수 뜬공으로 물러나 ‘절친 대전’은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강백호는 경기가 끝난 뒤 류즈룽과 만나 껴안으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그는 “류즈룽과 고등학생 때부터 대표팀을 함께 하면서 친해졌다. 8년째 친구로 항상 연락을 많이 했고 ‘좋은 데서 만나자’고 늘 얘기했는데 오늘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이렇게 만나게 돼서 기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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