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자 배구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던 세실리아 타이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62·페루)은 36년 만에 서울 한양대 올림픽체육관 코트를 다시 밟은 뒤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타이트 위원은 선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코트에 앉아 한동안 옛 기억에 빠져들었다.
2024 강원 겨울청소년올림픽 참관을 위해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타이트 위원은 페루로 돌아가기 전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을 찾았다. 이곳은 페루와 소련의 결승전을 포함해 서울올림픽 여자 배구 경기가 열린 경기장이다. 그는 페루 여자 배구대표팀 일원으로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다.
이 경기는 올림픽 배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치열했던 명승부로 꼽힌다. 1, 2세트를 페루가 먼저 가져갔고 소련이 3, 4세트를 따냈다. 마지막 5세트에서도 4차례나 동점을 이루는 접전 끝에 소련이 17-15로 승리했다.
체육관을 가득 메운 한국 관중들은 은메달을 딴 페루를 일방적으로 응원했다. 당시 페루 대표팀 사령탑이 고 박만복 감독(1936~2019년)이었기 때문이다. ‘페루 배구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박 감독은 1974년 페루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포함해 4차례 올림픽에서 페루 대표팀을 지휘했다. 타이트 위원은 “아빠 없는 가난한 소녀였던 내게 ‘미스터 박’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배구를 처음 시작한 내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고 응원해준 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코트 밖에서는 한없이 따뜻했던 박 감독이었지만 훈련만큼은 혹독하게 시켰다. 제대로 연습이 되지 않았다 싶으면 일요일에도 불려 나가 공을 받고 때려야 했다. 박 감독의 지도 아래 타이트 위원은 16세에 국가대표로 발탁돼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뛰었다. 이후 그는 ‘황금의 왼손(Golden Lefty)’으로 불리며 여자 배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무릎 수술을 받은 그를 다시 코트로 이끈 것도 박 감독이었다. 박 감독은 “이제 너의 시간이 왔다”며 혼자 재활에 열중하던 그를 주장으로 임명했다. 비록 금메달 직전에 멈춰섰지만 올림픽 은메달은 페루 배구대표팀이 거둔 역대 최고 성적이다.
타이트 위원은 “‘미스터 박’이 평생 눈물을 보인 건 서울올림픽 결승전에서 패했을 때가 유일했다”며 “나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에게 아버지같은 존재였던 그가 울자 모든 선수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박 감독은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배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타이트 위원을 비롯한 제자들은 당시 행사가 열린 미국 보스턴을 깜짝 방문해 그의 헌액을 현장에서 축하하기도 했다.
배구 선수에서 은퇴한 뒤 타이트 위원은 페루 국회의원을 지내며 여성과 청소년 스포츠 발전을 위해 애썼다. 이후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지난해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141차 IOC 총회에서 새 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IOC 위원이 된 뒤 아버지의 나라에서 2024 강원 겨울 청소년올림픽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며 “‘미스터 박’은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걸 가르쳐 준 분이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는 페루 청소년들을 위해 일했지만 IOC 위원이 된 지금은 전 세계 모든 선수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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