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형 200m 독주하다 7위 처져… “경험 부족에 혼자만 150m 뛴 셈”
2월 세계선수권 金… 자신감 충전
“훈련한 만큼 기량 향상됨을 절감… 고3 여동생 파리응원 메달로 보답”
“이번에는 시상대에 서야죠. 기왕이면 가장 높은 곳이 좋겠죠?”
한국 수영 간판 황선우(21)에게 파리 올림픽 목표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파리 올림픽 개막(현지 시간 7월 26일)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황선우에게는 서울체육고 3학년이던 2021년 출전한 도쿄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이다. 남자 자유형 100m와 200m, 계영 800m, 혼계영 400m 등 네 종목에 출전하는 황선우는 ‘마린 보이’ 박태환(35)에 이어 한국 수영 선수로는 두 번째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황선우는 도쿄 올림픽 때도 ‘제2의 박태환’으로 기대를 모았다. 황선우는 당시 주 종목인 자유형 200m 예선에서 당시 세계 주니어 기록(1분44초62)을 새로 썼다. 결선에서도 150m 지점까지는 선두였는데 마지막 50m에서 7위로 미끄러졌다. 경험 부족이 문제였다. 자유형 100m 때도 준결선에서 당시 아시아 기록(47초56)을 세웠지만 결선에서는 5위(47초82)에 그쳤다. 황선우는 결국 ‘노 메달’로 귀국길에 올랐다.
황선우는 “200m 결선에서 예선 때만큼의 기록만 냈어도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남들은 다 200m를 뛰는데 나만 혼자 150m를 뛴 거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다”면서 “도쿄 올림픽 이후 3년 동안 국제대회 경험을 충분히 쌓았고 여러 색의 메달을 목에 걸며 여기까지 왔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꼭 한 개 이상 가지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황선우는 “원래 큰 대회에 나갈 때마다 부모님이 항상 응원을 오셨다. 그런데 도쿄 올림픽 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사태 때문에 오시지 못했다. 이번에는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여동생까지 응원하러 파리로 오겠다고 한다. 올림픽에 나간다고 하니 동생이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 놨다’며 기뻐하는데 웃음이 나오더라. 내 마음가짐이나 환경 등 모든 부분이 완벽하다. 메달이 보인다”며 미소 지었다.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아니다. 황선우는 2월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분44초75로 자유형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전 세계에서 이보다 빨리 200m를 헤엄친 선수는 매슈 리처즈(22·영국)뿐이다. 리처즈는 이달 열린 영국선수권대회에서 황선우보다 0.06초 빠른 1분44초69에 터치패드를 찍었다. 0.06초는 손가락 한 마디 차이다.
그래서 수영 선수들은 손톱 길이에도 신경을 쓴다. 황선우는 “대회 2, 3주 전부터는 손톱을 자르지 않는다. 물속에서 손끝에 느껴지는 작은 감각도 놓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선우는 후원사인 SK텔레콤이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종료 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마련한 포상금 전달식에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참석했지만 손톱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황선우는 “어제까지 수영만 생각하느라 깎는 걸 깜박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수영장 깊이도 기록에 영향을 준다. 경북 김천실내수영장에서 열린 자유형 200m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분44초90으로 파리행 티켓을 따낸 황선우는 “선발전에서 1분 44초대 기록을 낸 게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김천수영장은 수심이 1.8m다. 수심이 훨씬 깊은 올림픽 수영장(3m)으로 가면 자연스럽게 (목표 기록인) 1분 43초대 기록도 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수심이 깊을수록 부력이 커지고 물살이 약해지기 때문에 기록 단축에 도움이 된다.
황선우를 비롯한 한국 수영 대표팀 선수들은 원래 파리 올림픽 전에 호주 전지훈련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대한수영연맹은 2022년부터 호주 국가대표 지도자와 함께 훈련하는 호주 전지훈련 프로그램으로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돕고 있다. 한국이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역대 최고 성적(금 2개, 은 1개, 동메달 2개)을 올렸을 때도 호주 전지훈련 효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호주수영연맹이 이달 중순부터 약 8주 동안 자국 대표팀 지도자의 겸업을 금지하면서 진천선수촌에서만 훈련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황선우는 “호주 훈련은 좋은 선수들이 많은 곳에서 그들과 함께하며 꿈을 키우라는 취지도 있었다. 지금은 국내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아 큰 차이를 못 느낀다. 계획이 바뀐 게 악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선우뿐 아니라 김우민(23)도 파리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메달 후보로 평가받는다. 김우민 역시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따냈다. 황선우, 김우민에 이호준(23) 등이 힘을 모아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따낸 계영 800m에서도 한국은 파리 올림픽 메달 후보로 꼽힌다. 3년 전 도쿄 대회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황선우는 “도쿄에서 덜컥 메달을 땄다면 자만심이 생겨 지금의 나보다 더 못한 선수가 됐을 것이다. 열심히 훈련하면 기량이 좋아진다는 것을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느낀다”면서 “아직 스물한 살밖에 안 됐고 이제 막 인생의 황금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파리에서뿐 아니라 연속해서 올림픽 메달을 따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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