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 영월 상동읍… 상동고 졸업생들 “폐교 막자” 합심
전국 돌며 전학생 9명 모집해 ‘야구고’ 설립 추진
주민들도 장학금 기부 등 십시일반으로 지원
전교생 25명 전국대회 ‘황금사자기’ 첫 1승
“내년에는 2승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폐광촌 아이들의 ‘황금사자기 첫승’
‘폐광촌’이라는 명사에는 보통 ‘쓸쓸하다’는 형용사가 따라온다. 하지만 야구는 서둘러 해가 지는 강원 산골 마을에 ‘반짝반짝’이라는 부사를 선물했다. 이름을 잃어 가던 학교와 마을을 모두 살린 상동고 야구부를 만나봤다.》
‘폐광촌’이라는 명사에는 보통 ‘쓸쓸하다’는 형용사가 따라온다. 하지만 야구는 서둘러 해가 지는 강원 산골 마을에 ‘반짝반짝’이라는 부사를 선물했다. 이름을 잃어 가던 학교와 마을을 모두 살린 상동고 야구부를 만나봤다.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읍(邑)은 어디일까. 정답은 강원 영월군 상동읍이다. 올해 4월 기준 상동읍 인구는 1012명이 전부다. 영월군에 속한 7개 면(面) 모두 상동읍보다 인구가 많다. 그런데 이 지역이 읍인 건 텅스텐 덕에 ‘리즈 시절’(과거의 황금기)을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상동광산에서 생산한 텅스텐은 한때 한국 전체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 덕에 영월 동쪽 끝에 있는 이 산골에 4만 명이 넘게 살았다. 상동읍에 분교만 4, 5개씩 있던 시절 상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조윤희 씨(56)는 “그때는 서울 명동 다음에 영월 상동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상동에서 서울에 가는 직통버스만 하루에 30대 넘게 있었다”고 말했다. 광산이 문을 닫은 이제는 ‘상동 시외버스터미널’에 시외버스가 한 대도 서지 않는다.
야구로 상동 살리기
버스가 끊기면 아이들부터 떠난다. 2022년과 2023년 모두 상동고 신입생은 ‘0명’이었다. 상동고와 교문을 같이 쓰는 상동중 졸업생도 다른 지역 고교로 떠나기 바빴다. 그 바람에 상동고에는 3학년 세 명만 남았다. 이들이 졸업하면 학교는 자연스레 문을 닫게 될 운명이었다. 상동 사람들도 “있는 애들도 떠나는 마당에 누가 이 시골에 오겠냐”며 폐교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조 씨는 생각이 달랐다. 상동고 28회 졸업생이기도 한 조 씨는 모교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동읍현안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동창생 김경수 씨(56)와 의기투합해 ‘상동야구고 설립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야구 선수 아들을 15년 넘게 뒷바라지했던 조 씨는 폐광지역개발기금을 활용해 무상 야구 전문 교육 제도를 만들면 학생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이웃사촌으로 인연을 맺은 양승호 전 프로야구 롯데 감독(64)에게 도움을 청했다. 야구부 단장을 맡기로 한 양 전 감독은 신일고 코치 시절 제자였던 백재호 감독(50)에게 ‘지휘봉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백 감독은 서울, 인천, 경기, 충북 지역을 돌면서 전학 희망자 9명을 모았다. 이들이 지난해 6월 19일 상동고에 전학 오면서 이 학교에는 2년 만에 1학년 학생이 생겼다. 올해는 야구부 신입생까지 들어오면서 상동고는 3년 만에 입학식도 열었다. 현재 이 학교 전교생 25명이 모두 야구부원이다.
엄경옥 상동읍장(56)은 “상동읍 인구가 997명까지 줄어든 때도 있었다. ‘이러다 정말 마을이 소멸되는 거 아닌가’ 싶어 무섭기도 했다. 야구부가 생기고 나서 다시 인구 1000명을 넘었다”면서 “밤에도 불이 켜 있고 아이들 소리가 나니까 어르신들도 정말 좋아하신다. 또 아이들 인사성이 정말 밝다. 어르신들이 저기 멀리서 보여도 얼른 뛰어가 인사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른다”며 웃었다.
온 마을이 키우는 야구부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는 말은 상동고 야구부 학생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르신들은 “염소 두 마리를 팔았다”며 150만 원, “배추가 잘 팔렸다”며 300만 원, “폐휴지를 팔았다”며 300만 원을 들고 학교를 찾았다. 상동교 교장실 한쪽 벽엔 ‘야구부 장학금 기부 증서’가 한가득하다. 엄 읍장도 “장학금 전달 방법을 알려달라는 이장님들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상동고에서 영월읍에 있는 별마로야구장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야구부 버스가 따로 없어 초창기에는 백 감독 차에 세 명, 상동읍자율방범대 차 두 대에 나머지 선수들이 타고 다녔다. ‘야구부에 큰 차가 필요하다’는 소식에 김치 공장 ‘솜씨가’ 김덕규 대표는 기꺼이 회사 승합차 열쇠를 내줬다.
지난해 장마 기간에는 ‘비 때문에 연습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동네 어르신들이 ‘전천후 게이트볼장’ 열쇠를 내주기도 했다. 지붕이 있는 넓이 482m² 게이트볼장에 그물망을 치자 그럴듯한 실내 타격 연습장이 됐다.
백 감독은 “처음에 학교에 왔더니 어떤 분이 운동장에 야구공 세 개를 놓고 가셨더라. 유니폼 도 없었는데 그게 야구부 1호 자산이 됐다. 이후 모든 분들이 도와주신 덕에 짧은 시간에 환경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다”면서 “처음에는 지도자가 나뿐이라 아이들 밥 먹이고 병원에 데려가는 것 모두 어르신들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정말 온 마을이 야구부를 함께 키워주고 계신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아웃카운트 딱 1개
지난해 야구부 학생들이 처음 전학 오던 날 상동고 정문에는 ‘야구부 여러분의 상동고 첫 등교를 환영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붙었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제78회 황금사자기 첫 일(1)승!’이라는 문구가 이 학교 정문 전광판에 반짝이고 있다.
상동고는 지난달 제78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을 통해 메이저 전국대회 데뷔전을 치렀다. 상동고는 서울 신월야구장에서 열린 1회전에서, 인터넷 중계로 경기를 지켜본 상동 어르신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클럽팀 EPBC를 7-3으로 꺾고 첫 승 기록까지 남겼다.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상동고의 2회전 상대는 국내 고교야구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고(1905년 창단)였다. 많은 이들이 상동고의 콜드게임 패배를 예상했지만 상동고는 9회말 2아웃까지 7-4 리드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동점 홈런을 내준 데 이어 끝내기 안타까지 맞으며 16강 목전에서 상동으로 돌아와야 했다.
상동고 선수들은 매일 오후 9시 학년별 단체 모바일 채팅방에 ‘감사 일기’를 띄운다. 이 경기에서 동점 홈런을 허용한 문석준(2학년)은 그날 밤 “경기를 뛰게 해주셔서, 마운드에 오를 수 있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적었다.
문석준은 “당연히 아쉬웠다. 그래도 최선호 멘털코치님(더홉티 스포츠멘탈코칭 대표) 덕분에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면서 “교문 전광판을 볼 때마다 ‘여기 와서 1년 동안 이 정도로 성장했구나’ 하고 느낀다. 우리도 경험이 쌓이다 보면 다음 대회에서는 2승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든다”고 말했다.
프로팀 코치 시절 멘탈 코칭의 힘을 몸소 느꼈던 백 감독은 감독이 되면 선수들에게 멘털코칭을 시키겠다는 꿈이 있었다. 상동고 감독이 된 후 백 감독은 신일고 동문 최 대표에게 멘털코치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백 감독의 전화 한 통에 멘털코치를 맡은 최 코치는 2주마다 상동에 와 아이들과 1박2일 상담을 한다.
최 코치는 “책임감이 강한 선수일수록 경기에서 패하면 힘들어 하는 시간이 길다. 특히 석준 이는 워낙 책임감이 강하다. 다만 책임감으로 힘들어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과적으로 팀에 도움이 안 되는구나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한다”며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친구나 지도자와는 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코치님은 너와 나눈 이야기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윤리강령이 있다’고 알려주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수포자’가 없는 학교
상동고 선수들은 상동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떻게 동네에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상동고에는 심지어 ‘수포자’(수학 포기자)도 없다. 올해 이 학교에 부임한 이종혁 교사(수학)는 “다른 학교와 달리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친구가 없다.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니 ‘각자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자’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동고 선수들도 원래는 ‘엎드려 자는 친구’였다. 외야수 박준형(1학년)은 “중학교 때는 수업 시간에 잠만 잤다. 그런데 여기서는 야구부원끼리 수업을 듣다 보니 수업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같은 반 학생인 투수 이승우도 “여기서는 틀려도 다 말하고, 몰라도 대답한다”며 웃었다.
백 감독이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포기하지 말자’다. 백 감독은 “실책을 해도 질책하지 않는다. 안타 맞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전력 질주를 하지 않거나 (수비 때) 백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경기에서 바로 뺀다”면서 “솔직히 야구를 잘해서 우리 학교에 오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산골까지 와서 야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계속해 “고맙게도 아이들이 노력을 정말 많이 한다. 밤에 방문을 두드려서 열어 보면 ‘운동 더 해도 되죠?’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박준형과 쌍둥이인 박시형은 “과학 시간에 어떻게 쳐야 홈런이 되는지 배웠다. 상대 투수 공이 빠를 때는 정타로 맞히기만 해도 공이 (담장을) 넘어간다고 한다. 그렇게 치는데 안 넘어가는 걸 보니 아직 힘이 부족한 것 같다”며 학교 체육관으로 향했다.
상동의 여름
“이모, 계란 더 없나?” 상동고 선수들은 매일 저녁을 먹는 식당 주인 김선애 씨(61)와 반말로 얘기할 만큼 친해졌다. 김 씨와 남편 박정열 씨(65) 모두 상동고 선배다. 비빔밥을 담은 그릇마다 계란 프라이를 하나씩 올려뒀지만 선수들 먹성에는 못 미친다. 김 씨가 팬 하나로 계란 프라이 다섯 개씩 뚝딱 만들어 나르는 사이 남편 박 씨는 계란 한 판을 더 냉장고로 옮겼다. 선수들이 다녀갈 때마다 계란이 네 판씩 사라진다.
고향을 떠났다가 10년 전 상동으로 돌아온 김 씨는 “애들이 너무 예뻐서 내가 먼저 말을 놓자고 했다. 어르신들은 나물 반찬 위주로 드시는데 야구부 애들은 ‘무조건 고기’”라면서 “아이들 덕분에 온 동네가 떠들썩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상동고 1학년 학생들은 지난달 ‘꼴두바위 축제’ 장기자랑 무대에 동네 할머니들과 한 팀으로 올라 상을 받았다. 정곤휘(1학년)는 “이제 이 축제 무대에 오르는 게 상동고 신입생들의 전통이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상동고 학생들은 축제 기간 어르신들에게 커피와 차를 나누는 봉사 활동에도 참여했다. 이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어르신들은 성금함에 찻값을 두둑이 냈다.
냉정하게 말해 상동고 선수들 대부분은 고교 졸업과 동시에 야구를 그만 둘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막 인생의 출발선 위에 섰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동을, 그리고 상동에서 보낸 자신들의 ‘리즈 시절’을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상동의 여름이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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