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 유도대표 허미미
작년 일본 국적 포기한 ‘유도천재’… 5월 세계선수권 女57kg급 제패
“‘할 수 있다’는 한국어 표현 좋아해… 올림픽전까지 애국가 가사 외울 것”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22)는 최근 자신과 약속 하나를 했다. 바로 올림픽 전까지 애국가 가사를 외우는 것이다. 한국 국적 아버지와 일본 국적 어머니를 둔 허미미는 일본 도쿄에서 나고 자라면서 애국가를 따로 배운 적이 없었다. 허미미는 원래 한일 국적을 모두 갖고 있었지만 지난해 생일(12월 19일)을 앞두고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최근 만난 허미미는 “한국 사람이 애국가를 외우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가사에 나오는 단어가 어렵지만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올림픽 때까지는 꼭 외울 생각이다.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따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부를 테니 많이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
허미미는 2017년 일본 전국중학교유도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유도 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교 시절에도 일본 내 톱3에 드는 유망주로 손꼽혔다. 그랬던 그가 한국 국적을 선택한 건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 때문이다. 할머니는 ‘미미가 꼭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에 따라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로 한 허미미는 실업팀(경북체육회) 입단 과정에서 자신이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1857∼1920)의 5대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2022년 성인 대표팀에 합류한 허미미는 올해 5월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여자 57kg급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여자 선수가 세계선수권 정상에 오른 건 1995년 지바 대회 이후 29년 만이었다. 이 체급 세계랭킹 3위인 허미미는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자신감도 생기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고 했다. 한국 여자 유도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조민선(66kg급) 이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허미미는 정교한 기술을 중시하는 일본 유도에 체력 훈련을 강조하는 한국 유도가 더해지면서 경기력이 물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미정 여자 대표팀 감독은 “미미는 무게중심이 안정적인 데다 잡기 기술이 좋아 몸이 넘어가서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허미미는 “(체력 훈련 때문에) 진천선수촌에서 매일 오전 5시 반에 일어나는 게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응했다. 유도를 하는 건 언제나 즐거우니까 힘든 체력 훈련도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파리 올림픽에서 허미미와 금메달을 다툴 선수로는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만났던 크리스타 데구치(29·캐나다·1위)가 꼽힌다. 캐나다인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데구치도 일본 유도의 장점을 고루 갖춘 선수로 통한다. 맞대결에서 3전 전패를 기록한 르하그바토고 엔흐릴렌(26·몽골·13위)도 허미미에게 버거운 상대다.
허미미는 “유도는 상대와 하는 스포츠라 경기 도중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 새로운 걸 준비하기보다는 내가 해왔던 것들을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어 중에 ‘할 수 있다’는 표현을 가장 좋아한다. 경기 때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들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올림픽에서 꼭 금메달 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허미미는 계속해 “선수촌에서 (펜싱 국가대표) 오상욱 선수(28)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일본어로 말을 걸어줘서 고마웠다. 파리에서 꼭 금메달 같이 따서 친해지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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